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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25. 2024

굳이 미안해라고 하지 않아도

영국에 와서 제일 많은 들은 단어가 sorry다.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게 되는 상황이 생기거나, 누군가가 비켜주기를 바라거나,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바로 sorry 한다. 혼잡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내가 sorry를 하는 경우와 듣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sorry라는 말이 입에 배어서 아이들에게도 자주 sorry라는 말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sorry라고 하는 상황에서 영국사람들은 절대 sorry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장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최근에 나의 영국인 동료와 인도인 동료가 번갈아 가며 각자 아이일로 휴가를 신청했다. 그럴 경우 사전에 교장에게 허락을 구하는 온라인 서식을 작성해서 보내면 허가가 떨어지고 매니저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알리게 되는 경우 인도인 동료는 sorry로부터 시작해서 왜 일을 쉬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영국인 동료는 이런 상황에서 sorry란 말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권리이고 허가를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본인이 누군가에 sorry 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가 하루 비우기 때문에 매니저가 나에게 쉬는 날 하루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한 상황이긴 했지만 동료가 나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도 sorry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도인 동료는 본인이 쉬는 날 내가 스케줄이 더 많을까 봐 나에게도 sorry라고 했다. 그녀가 sorry라고 하는 순간 매니저의 얼굴에 “네가 왜 나에게 sorry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표정이 나에게 포착되었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 차이가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부터 상황을 잘 보고 굳이 내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상대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길들여진 탓에 sorry란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버리지만 그런 상황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아주 불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영국화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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