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감사 초심
아직 난방을 틀지는 않았지만 집 바닥이 제법 차갑습니다. 실내화를 신고 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조금은 늦게 난방을 틀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이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길거리에서 노숙하시는 분들이나 조금 부족한 집에 사시는 분들은 벌써 찾아온 추위를 어떻게 견디실까?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하루이듯이,
난방을 틀까 말 까라는 고민을 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고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올해 가을끝무렵에 소원해 봅니다.
올해 겨울에는 추위로 아프거나 힘든 분들이 조금이라도 적어지시길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길에서 본 '깨알'들을 적어서 나눠 보겠습니다.
1. 천국의 사다리..
길을 걷다가 어느 작업장 사다리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옛날의 '천국의 계단'인가 드라마가 생각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저 사다리중에 잘 고르면 천국까지 올라가는 건가? 아님 저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면 더 멋진 풍광을 즐기고 하늘과 가까워지는 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면서 상상하는 사이 하늘높이 떠 있는 해가 눈을 더 이상 뜨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해를 느끼고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면서 끝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다리를 즐겼습니다.
푸트코트를 지나가다가 벽돌벽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붉은 벽돌벽은 왠지 정감이 가기에 길을 걷다가, 어디를 가다가도 붉은 벽돌벽이 보이면 잠시 서 있기도 하는 편입니다.
삶이 짧은 것은 알겠는데.. 디저트 먼저 먹으라고? 맛있는 거 먼저 먹으라는 유혹의 손길이었습니다. 삶은 원래 유한하다고 합니다. 그 유한한 삶을 풍성하게 사는 방법은 일단 살아 있는 자체에 감사하고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살고 있음에 감사먼저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짧으니 앞으로는 디저트부터 먹어볼까?라고 진짜 실천해 볼 생각도 하면서 웃고 지나갔습니다.
3. 목마름 번역기..
장식물의 글자들을 읽기 전에는 체중계나 온도계 같은 장식품인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식물 익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화분관리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자동 수분체크기라고 했습니다.
아!! 좋은 세상입니다. 화분이 목마른 지 물배 찼는지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나 강아지 울음소리를 듣고 즉각 번역해 주는 기계도 본 적이 있습니다. 말 못 하는 식물도 그의 의견을 대변해 준다는 것이 참 좋은 세상입니다. 제가 요즘 아이들 말 번역을 하고 있는데 이런 기구가 나온다면 가정에서 싸우거나 서운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명 속마음 번역기'가 나온다면요.
예전에 가정에서 수박, 참외, 방울토마토들을 키울 때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잎들마다 필요한 만큼의 물을 받아서 들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구역마다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물방울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와아!"하고 감탄하고 얼른 사진을 찍었습니다.
'또르르'굴러 내려가기 전에요.
자연의 신비는 늘 신비롭습니다. 자로 잰 듯이 오차 없이 배치해 놓은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휴대폰 사진기가 그 모습을 잘 포착해 줘서 엄청 고맙기도 했습니다.
1. 꽃길.. 아름다운 길..
마치 결혼식 행진을 위해 축포를 들고 서 있는 결혼식장 스텝들 같았습니다. 아내에게도 그 축포를 받으면서 행진을 시작하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늘 '꽃길'만 걷자면서 힘차게 결혼식날 걸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던 '꽃길'은 아직 걷지 못했습니다.
늘 아내는 "제발 이제 고생이 끝났으면..." "제발 매월 결제금액에 덜덜 떨지 않았으면..." 하면서 숨이 턱턱 막히는 일상을 엄청 힘들어합니다. 그럴 때마다 '꽃길'은 고사하고 '그냥 평범한 일상'자체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 딸처럼 제어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에만 충실해서 가끔 화내거나 투덜거리는 제 모습을 또 떠올렸습니다. '이제 그만!! 온유하고 평범한 가장이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가정'이 되자고 잠시 서서 다짐했습니다.
축포가 늘어 선 것 같은 공원입구를 지나 저 멀리 가시는 어느 행인은 오늘 '꽃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제 아내도 얼른 '평범한 일상'과 '꽃길'을 걷도록 부지런히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초심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신혼 때 사용한 아이폰4로 찍은 사진들은 왠지 더 정감이 가기도 합니다. 아이폰4가 여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상 중의 하나입니다.
화분에 꼽아놓은 '자동 수분 체크기'를 보면서 우리의 속마음을 번역해 주는 것도 나오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말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을 빙빙 둘러서하는 사람, 필요한 말은 안 하고 엉뚱한 말만 하는 사람, 절대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붙여 놓으면 자동으로 '필요한 말을 상대방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작년처럼 또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제 온도계가 '0도'를 제법 자주 표시하면서 '시원한데'를 넘어서 '어! 추운데?' '오들오들 춥다.'라고 말할 정도로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고 점점 더 추워질 기세입니다.
언젠가 도로 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할 때도 있었고, 건물 대리석 바닥에 앉아서 대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맨날 걷던 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 '찬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는 옛말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제법 추운 날씨와 찬 바닥을 알면서도 베개와 이불 삼아서 잠을 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보호시설에서 따뜻한 가을, 겨울을 맞이하셨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해보았습니다. 또, 각 나라 전쟁이 속히 끝나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눕듯이 급한 대로 참호에 기대어 앉아서 잠을 청하는 수많은 병사들도 추위를 잘 견뎠으면 합니다.
제일 감사한 것은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납니다.
"관절 수술 전에는 횡단보도에서 빨리 못 건너갔다. 그냥 슬로모션 로봇처럼 걸었다. 이젠 그런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수술했어도 조심하고 살아야 해!!"
친구의 말을 생각하다 보니 '그저 걷기'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요. 걸으면서 길거리의 작디작은 '깨알'들을 여전히 보고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나눌 수 있도록 늘 격려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