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끔 새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는 골목길, 담벼락옆 등등 번듯한 길보다는 늘 걷는 길보다는 애매한 길들을 걷기도 합니다. '깨알'을 찾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냥 뭔가 다른 느낌을 느끼면서 걷고 싶어서인데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예상치 못한 느낌들을 즐기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는 멋스럽고 패션에 충실한 신발보다는 늘 걷기 좋고 편안한 운동화가 1년 365일 함께하는 편입니다.
걷다 보면 뜬금없이 돌발적으로 만나게 되는 '깨알'들이 아직도 신기합니다. 그리고 무제한이라서 늘 행복합니다.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보일 때마다 마치 저만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기분을 나누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보통 평일은 공개반성문 같은 글들을 쓰면서 저를 돌아보고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주말에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깨알재미'의 감흥을 적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판을 두드리곤 합니다. 이럴 수 있음에 여전히 감사하면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1. 길거리 깨알..
1. 낙상 조심..
어느 아파트 담벼락 길을 걷다가 만났습니다.
주민들이라고 말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올라가서 떨어질까 봐 조심해 달라는 글입니다. 어릴 때 꼭 이런 곳은 전부 올라가서 밀어내기하다가 누군가는 머리통이 깨지고 피가 나고 옷이 찢어져서 엄마에게 끌려들어 가곤 했던 기억도 납니다.
당부의 글을 보다가 사진을 찍은 이유는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느낌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화분'에 눈이 갔습니다. 추락위험이 있으니 '섣불리 내려오려고 하지 마세요!' '조심하세요.'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 화분에게 당부하는 것 같아서 웃었습니다.
2. 나 여기 있다..
업체를 방문하고 바로 집에 퇴근하는 길에 길이 막혀서 답답했습니다. 다리 위에서 대기 중 인터라 돌아갈 수도 빠질 수도 없는 외통수 길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 멀리 보이는 석양이 뭔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 아직 여기 있어! 나 건재해!! 퇴근 잘해!! 잊지 말아 줘!"
그렇게 말하면서 저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얼른 '1초 컷'했습니다. 뜨겁게 이글거리던 한낮의 태양이 저녁과 교대하면서 아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3. 시간은 약이다..
아직 인생을 논할 나이는 아닙니다만 동화 같은 벽돌담과 담쟁이덩굴의 교감이 너무 재밌어서 찍어봤습니다.
숭숭 뚫린 벽돌담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고통과 상처' 같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히고 또 다른 추억과 아름다운 것들로 덮혀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더 아름다운 것들로 덮혀질 순 있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바라봐서인지 붉은 벽돌담과 담쟁이덩굴이 조화로우면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4. 나는 여기까지이다..
외곽 도로를 걷다가 포장도로 측구에 떨어진 캐리어 바퀴 세 개를 보면서 슬펐습니다.
여행 캐리어의 값어치를 평가할 때 종종 '바퀴의 성능'을 논할 때가 많습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하면서 다양한 구역에서 '바퀴'가 얼마나 잘 돌아가고 여행자를 편안하게 해 주는지에 따라서 캐리어의 값어치는 올라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귀한 가치를 지닌 '바퀴'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3개
그렇다면 1개의 바퀴가 역할을 감당하면서 길을 간 것일까? 그렇다면 여행자는 여행을 떠나는 길이던, 돌아오는 길이던 그 흥분과 설렘은 이미 사라졌겠다 싶었습니다. '바퀴'들이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몫을 성실히 감당했습니다. 이렇게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2. 감사 & 행복
1. 달빛과 그들의 향연..
요즘 컴컴한 새벽에 출근하고 깜깜한 저녁에 퇴근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두가 그렇게 지내고 있으시지만요.
요즘은 '단풍놀이'시즌이라고들 말씀하시고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해에는 그럴 여유를 부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심때 길을 걷다가 또는 이른 아침해 덕분에 연한 빛깔의 단풍잎, 길바닥에 이미 떨어진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도 올해는 '단풍놀이'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왜 살아가는지?"보다는 "여전히 살아내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 같습니다.
다른 가족들처럼 계절에 맞는 외부활동을 하나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남편, 아빠의 미안함'에 퇴근길에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향하곤 하는데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달빛이 추천한 나무와 나뭇잎들을 보면서 가을 나무의 아름다움, 오색찬란하고 알록달록한 단풍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고운 빛깔의 잎사귀들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달빛 없는 깜깜한 밤이라면 몰랐을 나무였습니다. 잠시 서서 보는내내 '감사'했습니다. 깜깜한 저녁이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요. 잠시 위로받는 것같아서요. 마음이 꽉 차는 '감사 감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3. 마음에 초심 추가
1. 바라보기..
먹이를 바라보는 한 마리 오리(?)를 보면서 얼른 아이폰4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때 가졌던 초심을 살려내기 위해 신혼 때 사용했던 아이폰4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제가 한때 일반 직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서 지방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돈은 최대한 모아서 매월 집에 보내서 빚을 갚고 생활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다짐하고 시작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매일 각출해서 저녁식사를 하다 보니 계획과는 다른 돈벌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교통비를 아끼려고 집에 안 올라올 때도 있었고요. 그럴 때면 주변 하천 벤치에 앉아서 편의점 천 원 커피를 종이컵에 마시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하천 물을 바라보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일을 다시 시작해서 가족과 함께 살며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한 때였고요.
그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오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오리(?)도 하천물속에서 먹이를 찾아서 먹으려고 하거나,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찾아서 가져갈 생각에 지긋이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다시 가족과 살면서 일하게 되면 '아이들을 매일 사랑해 주고 아내를 끔찍이 아끼겠다!!'라는 다짐을 매일 했었습니다. 그때 초심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고마운 오리(?)였습니다.
오늘도 깨알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유명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대단한 에세이스트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말마다 길에서 만난 '깨알'을 나누고 보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호사를 누리고 있음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깨알을 보면서 깨알을 알아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진짜 발바닥아래에 있는 다양한 '깨알'들이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찾으려 헤매고 다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예전에 의류회사에 다닐 때는 고통이었습니다. 주말이면 명동 로드샾이나 유명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시장조사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세일행사하는 브랜드, 고객들이 엄청 몰리는 매장에서 인기 아이템, 흥행 아이템들을 조사해서 보고하고 특별기획상품을 긴급준비하고 그럴 때였습니다. 그럴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지켜보는데도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길거리 '깨알'은 그저 걷기만 하던데도 보입니다. 진짜 감사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