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조이 May 29. 2023

도심 속에서 누구나 누릴 권리, 낭만적 은둔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展 리뷰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

_ 2020년 영국 『가디언』지의 기사 제목



테헤란로를 보며.

다시, 에드워드 호퍼.


이 달 초 팟캐스트 녹음 미팅이 있어 네이버파트너스퀘어 역삼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 역삼역에 내렸다. 역삼역 출구로 나와 테헤란로가ㅡ우리 동네 도로와는 그 위상을(?) 달리 하는ㅡ 내앞에 주욱 뻗어있는 광경을 보고 걸음이 멈칫 했다.


이 곳은 어디인가. 


내 이십대의 칠할 즈음 되는 시간이 쏟아진 테헤란로. 온 가족 다 흩어지고 엄마랑 나와 단둘이 이 근방 어딘가에 작은 집을 얻어, 과외 구하겠다며 만든 전단지를 이 도로 귀퉁이에 붙여 대학생활을 겨우 마쳤다. 인정이라고는 눈에 뵈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곳이었지만 졸업 후에도 괜히 떠나기 싫었던 곳이었다. 결국 스물 일곱에 선릉 소재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더 살게 되었던.  


일찍 도착해 느릿 느릿 파트너스퀘어로 걸어가다 괜히 한 번씩 테헤란로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 '이 많은 고층 빌딩 중에 내가 들어갈 멋진 회사, 아니 내 책상 의자 하나 없냐'고 서글프게 걸었던 스물 넷의 나를 봤다. (안녕, 난 서른 여덟 김청하라고 해)







도시인들이 호퍼를 찾는 이유



팟캐스트 녹화를 마치고 일주일 뒤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전시회를 보러갔다. 10시 오픈 전 9시 반에 도착했는데 서울시립미술관 앞은 호퍼 그림을 기다리는 이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고독한 사람들과 다소 차가운 느낌의 도시가 그려진 호퍼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오픈런한 호퍼의 관람객들



거의 평생을 살았던 뉴욕은 호퍼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도시였다. 화가로서 호퍼의 대부분의 관찰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1900년대 초의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호퍼가 그린 건, 산업화의 결과로 보여지는 북적이는 군중들이나 수직적 스카이라인이 아니었다. 만약 호퍼가 그 당시 뉴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1900년대 초 뉴욕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화가' 정도로만 알려졌을 테다. 


다행히도(?) 호퍼는.

이런 것들을 주로 그렸다.


철길 옆의 녹색 언덕으로 보이는 일몰 (위 그림)

공연 전후 공연장에서의 고독한 인물들

낡고 사라져 가는 19세기 건축물의 코너, 지붕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들 (수평적 구조)

옆으로 길게 뻗은 다리 (옆으로 확장)

어두운 밤 조명이 켜진 실내 공간 (외부와의 단절감)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1929)



대부분 인물 없는 뉴욕 풍경을 그렸고 고작해야 한두 사람의 인물을 그려 넣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활력과 기기 발달로 인한 문명의 현대화 모습은 극히 제한하거나 배제하고 호퍼 자신의 내면으로 바라본 뉴욕을 구현했다. 


낮 시간 생산적인 업무를 훌륭하게 해낸 이들의 퇴근길, 따스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인물들간의 단절, 공연을 보며 앉아있는 인물의 뒷모습이나 공연 막간의 인물들의 적막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그렸다. 호퍼가 뉴욕에서 바라보고 느낀 건 바로 도시인의 지극한 일상 속 고독, 소외, 단절감 혹은 산업화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건축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호퍼의 그림은 오늘날 여러 도시인들에게 많이 소환되고, 회자된다.




낭만적 은둔으로 얻는 것들



(좌) <휴게실> (우) <아침 햇살>



같은 느낌으로 10년 넘게 꽤나 자주 감상했던 호퍼의 그림이었건만, 이번 전시에서는 어쩐지 이전과는 다른 감상을 했다. 호퍼가 자신의 내면으로 뉴욕을 그렸듯, 나도 나의 내면을 따라 호퍼를 감상한 것.


호퍼의 그림 속 도시인들은 정말로 소외와 단절감으로 침체되고 어두운 내면을 가진 걸까? 외로울까? 불안하고 두려울까?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기대할까?


아니다.


그들은 지금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자신만의 시간,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누리고 그 공간을 즐기고 있다. 이것을 낭만적 은둔이라 한다. 타인이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자신만의 은둔을 지나고 나면 '내면'이라는 상자에 보물들이 그득하게 채워진다. 



(좌) <뉴욕의 방> (우) 호텔 로비



분주함에 억눌린 일상들, 한계와 과거에 사로잡힌 마음, 미래에 대한 불안, 인정받지 못할까봐 보상받지 못할까봐 초조한 마음, 주고 받은 상처들에 날카로워진 영혼, 잘 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의식, 무력한 몸.. 


나 자신과의 대화를 거듭할수록, 부정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고유한 리듬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감이 채워지고 상처와 분노를 거둔다. 정서와 영혼은 회복된다. 나의 문제와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내 삶에 우호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채워진다.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진 생각들은 나의 일에도,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편안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전시를 다 보고 집으로 오는 길. 일주일 전 봤던 내 청춘의 테헤란로와 호퍼의 그림들이 포근하게 머릿속에서 겹쳐 있음을 느꼈다. 호퍼의 그림들이 테헤란로를 걷는 나를 덮어 주었다는 느낌이랄까?


테헤란로를 매일 밟고 다니던 그 시절 내가 강남이라는 도시에서 누렸던 건 '나만의 낭만적 은둔'이었다. 그 도시에서 동기들과 스터디를 했고 취업 준비를 했고 연애를 했고 교회를 다녔다. 그 분주하고 활력 있는 동선 속에 언제나 있었던 일정이 바로 스타벅스의 유리 통창 앞에 앉아 가만히 테헤란로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멍 때리기 대회 자신 있는 1인...) 


세상에, 그 많고 많은 테헤란로 인파들을 오래도록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내 안의 혼돈이 차츰 정리되곤 했다. 내 속의 모난 것들이 둥글어졌다. 










전시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기간 : '23.4.20(목)~'23.8.20(일)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작품대여처 : 뉴욕 휘트니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톨레도미술관, 버지니아미술관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시간 : 10:00am~20:00pm (주말은 19:00pm)

내용 :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270여 점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전시실 소개 : 

_ 에드워드 호퍼 (2F)

_ 파리 (2F)

_ 뉴욕 (2F)

_ 길 위에서 (3F)

_ 뉴잉글랜드 (3F)

_ 케이프코드 (3F)

_ 조세핀 호퍼 (1F)

_ 호퍼의 삶과 업 (1F)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를 말해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