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며 귀를 열어주는 사람들
나 : 어휴, 뭐 준비한 것도 없어서 어쩌죠. 다른 날로 인터뷰를 미뤄 볼까요?
위젤라tv : 아니에요. 그냥 오시면 되요. 그대로 오셔서 그대로 말하시면 되요. 일단 오셔요.
_ 위젤라tv [당신의 발견] 녹음일 앞두고
글 쓰는 사람과 글 쓰게 하는 사람.
말 하는 사람과 말 하게 하는 사람.
글쓰기 커뮤니티 리더로 1년 반째 행보를 거듭해 오면서 글, 사람, 글, 사람, 글, 사람을 오갑니다. 나는 글 쓰게 하는 사람, 이라는 정체성을 떠올릴 때마다 '글쓰기를 말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니까.' 합니다. 그래 '공식적 말하기'를 꺼려왔던 것이 진실입니다. 말하고 싶으면 차라리 쓰자, 딱 이겁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안 씁니다?)
그러다 지난 5월, 퍼스널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한다는 컨셉으로 상당한 분량의 '사람 콘텐츠'를 탐구하고 생산해 온 위젤라tv의 아나운서(인터뷰어) the덕 님께 의아한 제안을 받은 것이지요.
"이너조이님, 지금 살고 있는 그 이야기, 녹음해 봐도 될까요?"
내게 글 써달라는 사람은 참 많았지만 말 해달라는 사람은 태어나 네 번째 정도 되시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콘텐츠로 봐줄 만큼 적정 거리에서 애정을 보내준 사람들이겠습니다. (지나치게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콘텐츠로 보지는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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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못해서, 말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될까봐' 약간의 망설임을 갖고 the덕 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었죠. 그때 그 당시 함께 계시던 알레 작가님이 아주 짧은 찰나에 가볍게 한 마디 하시더라구요.
"덕님이 해주시는 거, 한 번 꼭 해보세요."
말하게 해주고
귀를 열어주는 사람들
인터뷰의 컨셉을 들어보니 '당신의 발견'이라 했습니다.
당신을 파헤치고, 당신을 탐구하고, 당신을 연구하겠다, 라는 말보다 훨씬 다정하게 들렸습니다. 세상에 숨겨진, 브랜딩될 만한 사람들을 위젤라tv에서 인터뷰하며 그저 발견해 보겠다는 겁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미리 준비한 대본, 사전 대화에 기대어 인터뷰의 열매와 결과를 의도적으로 쥐어 짜내는 자리가 아니었죠.
우리는 물어 볼께요.
당신은 말만 해줘요.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발견해 볼께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6278/clips/1513
커뮤니티 디자인의 기술과 기획에 대해 이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나의 속마음을 꺼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위젤라tv에서 물어오는 질문에 한 시간 동안 답변하다 보니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살게 된 내 안의 욕구와 이상, 이 일을 잘할 수밖에 없게 한 과거, 커뮤니티 인사이트와 영감의 출처를 내 입으로 정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커뮤니티 회고를 한 셈이죠.
the덕 님이 다음 질문을 낼 때마다 느꼈습니다. 직전의 내 말을 마음으로 소화하셨다는 것. 머리로 소화한 사람과 마음으로 소화한 사람의 질문력은 천지 차이입니다. 일할 때나 먹을 때나 관계를 맺을 때나 이성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감성'을 우위에 두는 사람이라 양자의 차이를 아주 민감하게 읽어낼 수 있죠. the덕 님의 인터뷰는 말하는 나, 이너조이의 당시 감수성을 수용하며 진행된, 놀랍고 존경하고 싶은 모습이었어요. (인터뷰는 the덕처럼)
그런데 저는
인터뷰마저도 글로 쓰고파요
전시회를 다니며 아티스트가 궁금해지면, 아티스트를 인터뷰한 기사글을 찾아 읽습니다. 미술계 단어도 거기서 많이 배우고,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형식의 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론가들이 쓴 글보다, 아티스트의 인터뷰 답변을 읽을 때 잘 공부했다는 느낌이 들고요.
위젤라 인터뷰 아지트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길, 영상과 팟캐스트로 수없이 쌓여있는 위젤라tv의 인터뷰 콘텐츠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결국 다음날 '위젤라 사람들 인터뷰집 내주세요!' 건의하는 카톡을 하고야 만.
'사람 콘텐츠'의 힘을 느낍니다.
'사람 콘텐츠'가 생산되는 방식은 영상과 오디오, 종이책과 전자책뿐 아니라 커뮤니티나 강의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할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콘텐츠 생산자들은 '사람 콘텐츠'를 절대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커뮤니티를 운영해 보면 자연스럽고 뻔하게 알게 되는 것이 있거든요. 사람들을 모이게 한, 내가 기획한 그 콘텐츠,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고, '사람들' 그 자체가 커뮤니티의 강력한 콘텐츠가 된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 커뮤니티 리더는,
여기에 모여 쓰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하고 기록하고픈 작은 소망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