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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Oct 18. 2020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잘하는 한 가지

타고난 천재보다 키워가는 천재성

“너는 임용 준비하겠다는 애가 맨날 대외활동만 해서 되겠나?”


무릇 고시생이라 하면 제대로 꾸미지 않은 외모에 방에 틀어박혀 진득하게 앉아 두꺼운 책을 읽고, 저러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포스로 공부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나름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끼리 박 터지게 공부하니 학과 자체로 3학년부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나는 비사범대 일반대학 교직이수 복수전공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학생이었다. 무엇하나 필드에서 유리할 조건이 없지만 3학년인 나는 일반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다. 24살이라는 이유로, 지금 아니면 경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별에 별걸 다 하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취업담당관 선생님은 임용 준비하겠다는 애가 남들이 하는 것도 잘해보고 싶다며 다른 곳에서 성과를 올리는 게 걱정이셨나 보다. 하나만 잘해도 부족한 이 세상에서 나는 왜 딴짓을 하고 다녔을까.      



다재다능한 사람들은 ‘딴짓’을 잘한다

학생들 진로·진학 상담으로 유명한 선생님이셨다. 취업에 목이 타는 대학 4학년들이 한 번쯤 상담으로 거쳐 가는 관문과 같은 선생님이고 그만큼 실력이 좋으셨다. 그 선생님을 거쳐간 선배들 중 가장 큰 아웃풋은 취업 썰을 책으로 낸 선배였고 이내 전국을 휩쓸고 다니는 프로 강연가가 되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잘하시던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조언을 거절했다. 예비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거부한 게 아니라,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만약 그 날의 내가 선생님의 한 마디에 청천벽력을 맞아 정신을 차린 자세로 공부만 시작했다면 이후의 찬란한 우연과 뜻깊은 경험,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한 말로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시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교직이수를 했지만 이왕 하는 김에 독어도 마스터해보고 싶었고 독어를 한 만큼 영어도 잘하고 싶었다. 맛깔난 진행도 잘하고 싶어서 행사 MC도 해보고, 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기 계발서 중 심리학 원론이 나오는 부분에 원전을 찾아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하다. ‘다재다능하다’는 네이밍보단 다재다능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전과 다를 게 없다 하여 잘하는 사람이 되는 시도를 멈추는 게 좋을까?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폴리 매스’라고 부른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평생 살기를 거부하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단지 재능이 많은 사람과 진정한 폴리 매스는 다른 차원이라고 한다. 폴리 매스가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분야를 넘나드는 출중한 재능’이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진정한 폴리 매스로 보기 어렵다. p.26-29  

 

선생으로 불리고 있다. 브라운 선생과 촘스키 선생이 쓴 책을 수 백번 돌려보며 그들이 만든 지식을 내재화했던 노력이 내 밥벌이가 되었다. 그러나, 필드에서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당신이 많이 알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소리보단 본인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내 경험을 녹여 조언을 얘기해줄 때였다. 책으로 공부한 지식보다 딴짓하며 체득한 경험이 더 먹힌다는 소리다. 고등부 수업을 하지 못하면 고수익이 보장되지 못하는 곳에서, 단편적인 전문 지식보다 이것저것에서 끌어온 경험이 수익을 이끌고 있다. 과거의 딴짓이 전문성에 한 역할을 하는 중이다. 물론, 과거에는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고 한 일들이다. 영어 선생이 영어만 잘하면 되지 경험을 쌓겠다고 싸돌아다니냐고 핀잔을 들은 일이다.



괴테가 작가인가요?

만약 괴테가 심리학, 철학 그리고 정치학에 일가견이 없었다면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전 유럽을 강타하고 발간 후 250년간 세계를 휩쓴 소설이 될 수 있었을까? 단지 글 잘 쓰는 작가로 칭하기엔 그는 철학가에 가까웠고, 상동 관계라는 식물 관찰 결과로 생물학에 공헌이 큰 사람이었다. 당신은 괴테를 ‘무엇’ 전문가로 부를 것인가?      


한 사람에게 하나의 고정된 역할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화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제약한다. p. 59   
  


다음 두 가지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다. 누구인지 맞춰 보자.      



(A) 인물 : 사회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인 자세가 되었다. 1967년에는 미 국방성과 국무성 앞에서의 시위로 투옥되기도 한다. *   


(B) 인물 :  현대 언어학의 발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언어학자이다. 변형생성문법 이론은 개개의 언어 수행에 앞서 존재하며 그것을 생성시키는 인간의 보편적인 언어능력과 언어 규칙에 대한 탐구로 언어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   


나는 (A)로 설명되는 사람에 대한 감을 도무지 잡을 수 없지만 (B)는 자다가 물어봐도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B) 설명의 인물이 더 어려울 것이다. (B) 인물 때문에 빈 노트에 트리(Tree diagram, 수형도) 그리다가 전 세계의 나무(트리) 다 쓰겠다고 농담했을 정도로 통사론을 질릴 정도로 후벼 팠다. 한눈에 보기에도 쉬운 영어문장 하나를 두고 치킨 다리의 살을 바르듯 문장 구조를 조각내서 주어를 다른 주어 자리로 옮기며(Subject to Subject Raising) 어떤 문장은 그 구조가 가능하고, 어떤 문장은 불가능한지 머리를 싸매며 분석했다. 비슷하게 생긴 두 가지 문장을 두고 하나는 정문이고, 하나는 비문이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느낌이 아닌 근거에 맞게 설명해야 한다. 정말 딱 보기에도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를 실천했고, 이를 가능하게 한 (B) 인물은 MIT 공과대학 교수인 노엄 촘스키이다. 그리고, (A) 도 그의 이야기이다.      


노엄 촘스키는 현존하는 폴리 매스 지식인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의 논문 피인용 지수는 모든 저술가 가운데 언제나 상위권에 들어간다.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각기 다른 4개의 분과 학문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그의 논문이 인용된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언어학(특히 통사론)부터 인지과학, 철학(특히 마음과 정신), 지식의 역사, 수학, 사회학, 정치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150권이 넘는 책을 썼다. p.389     
위 그림이 수형도이다. 촘스키의 통사론 중 아주 약소한 일부 내용이며, 촘스키라고 쓰고 임고생들의 적(?)이라고 부른다.


일반 사람들이 보는 뉴스에서 노엄 촘스키는 자신만의 정치적 표현으로 드러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누군가 그를 언어학자로 부르고, 누군가는 사회학자로 부른다. 괴테도 촘스키도,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나로 두지 않고 여러 개로 두었다. 단일 전문가라는 범주화를 거부하고 관련 없는 분과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다재다능인으로서 자신을 뛰어넘고 시대를 뛰어넘었다. 


괴테는 무엇에 전문가인가? 희곡? 생물학? 철학?

촘스키는 무엇에 전문가인가? 언어학? 사회학? 정치학?


전문가를 하나의 획일화된 분과 영역으로만 규정한다면, 괴테와 촘스키는 어느 것도 전문적일 수 없다. 하나를 잘한다고 하여 다른 것들은 상대적으로 못할 거라는 규정을 파괴한 자들이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 않고 노력을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성취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시작은 분명 딴짓이다.


언어학자 촘스키에게 사회학은 딴짓이다. 사회학자 촘스키에게 언어학은 딴짓이다. 사회학자 촘스키의 모습이 익숙한 사람들은 문장 구조를 분석하는 촘스키가 딴짓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딴짓치고는 파급력이 높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잘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런 다재다능한 촘스키에게 딴짓을 하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방랑을 낭만으로 착각하진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어 학원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었다.


"선생님, 바다는 영어로 sea잖아요? 근데 왜 [씨]라고 읽어요? [세아] 아니에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선생님은 당황하셨지만 차분히 응대해주셨다. 아직도 그 선생님의 '음.. 음..'이라는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러게, 세아-라고 읽지 않고 씨-'고 읽네?'라는 대답이 전부였으나 더 이상 묻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10년이 지나 공부를 하며 스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기쁜 미소로 유레카! 를 외친 영화 같은 대답이 아니라, 이렇게 어렵게 배워야 하는 거냐며 뚱한 표정을 짓는 모노드라마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제도권 공부가 정말이지 달갑지 않았고, 지금도 달갑지 않다. 


" 'tick, stick, hits, bitter’ 이 단어의 t는 모두 다른 소리이다."


정말 재미없고 불필요해 보이는 지엽적인 지식이다. 애들 가르칠 때 사랑으로 이해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면 그만인 것이지, 교원 임용시험에서 요구하는 이런 지식을 어디에 써먹을는지 의심이 많았다. 현장에서 t 소리가 다른 이유가 뭔지 설명해 달라고 질문할 학생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나의 불만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므로 투덜거림을 내려놓고 공부했다. 그러나 언제 써먹을지도, 아니 평생 생각도 나지 않을 거라 믿은 지식은 수업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힘이 되었다.  현장에서 영국 영어 소리가 들리면 초등학생들은 웃는다. 본인들이 듣던 미국식 영어가 아니라서 투박하고 매끄럽지 않은 발음이 어색하고 웃긴 것이다. 지엽적이라고 여기고, 쓸 데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때 떠오른다. 그리곤 왜 어색한 발음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또 언젠간 기지를 펼칠 때가 나타나지 않을까. 처음 볼 땐 불만 투성이었던 제도권 속 전문지식은 배워두면 유용하다는 만족감까지 주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일찌감치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도록 그들을 응원하고 압박한다. 그 결과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학생들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여러 가능성을 놓고 좌절과 혼란, 불안에 직면하곤 한다. 자신이 매진해야 하는 분야를 너무 이른 시기에 하나 선택하는 결정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p.165      


사도헌장을 백날 품고 다니며, 교육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를 말하면서 정작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방랑을 낭만으로 착각하는 궤변가가 될 뿐이다.(정작 사도 헌장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은 필자다.) 내가 전문가가 되려는 노력 조차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제도권 공부는 자체가 나쁘기보단, 나쁘게 이용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사회가 무엇을 정했는지 직접 뛰어들어 배우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정말 문제는, 획일화된 규정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알았기 때문에 배우는 자세를 '멈추는 것' 이 문제가 아닐까?


제도권이 정해놓은 획일화된 공부는 절대 가치가 아니다. 단지 한 번쯤 배워두면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가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한 가지 영역에서 전문가 되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본다. 지식의 융합은 하나의 지식을 알아야 다른 지식과 섞이기 쉽다. 내가 '0'의 상태라면 아무런 것과도 섞일 수 없다. 폴리 매스들도 잘하는 것 한 가지부터 시작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되었고, 점차 우연한 만남과 사건 그리고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슬슬 딴짓을 시작했다. 한 번에 한 게 아니라 서서히 시작해서 또 다른 재능을 키웠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개를 무한히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천재들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빈치만 보더라도 영재가 아니라 천재이다. 자기 계발 시장의 샛별과 같은 팀 페리스나 수험생들의 아이돌 현우진 강사만 보더라도 천재급이다. 나는 그들의 천재성을 두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비교하여 허무에 빠질게 아니라, 시대를 먼저 읽은 그들은 무엇이 달랐는지를 발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본다. 다른 점을 배우고, 내면을 통찰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자극을 받아야 한다.


 여러 가지를 잘하고 싶은 낭만을 유지하되, 열정의 온도를 조절해야 우선순위를 모르는 방랑을 줄일  있다.  다양한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교육에서 무엇을 얻어갈지 고민하고, 직접 행동하여 배우는 게 현실적이다.  내가 하고 있던 것이면 멈추지 않을 것이고,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걸음  내딛으며 딴짓을 시도할 이다. 딴짓하다가 넘어진 오십 보가 가만히 있다가 걷지 못한 백보보다 낫다.



<참조 자료>

「폴리 매스」-와카스 아메드

   *[네이버 지식백과] 노암 촘스키 [Avram Noam Chomsky]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노암 촘스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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