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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07. 2020

17개의「데미안」중 무엇을 읽을지 고민된다면

17개 번역서 선택 가이드라인

「데미안」을 읽었다면 「데미안」을 잊어라


한 권의 책을 읽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고전 소설이자 청소년 필수도서라는 딱지가 늘 따라다니는 그 책은 새가 알에서 나온다는 구절로 유명하다. 수험생 시절, 개념 하나라도 더 공부해도 모자를 시간에 나는 하면 안 되는 일을 몰래하는 기분으로 책의 활자를 읽었다. 읽다가 지겨우면 그만둘 생각으로 한 장, 두 장을 넘기는데 시간을 잴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말았다. 그 이후로 1년에 한 번씩, 예고 없이「데미안」을 통독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놀다가 다쳤을 때 양호선생님은 빨간약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 주었다. 상처부위가 따끔하지만 일단은 병균을 소독하는 게 먼저이다. 긴급 처치가 우선이다. 상처부위에 새살이 돋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데미안은 내 심리가 약해질 때 발라야 할 빨간약 같은 책이다. 삶이 늘 그렇듯, 힘든 일은 예상하기 어렵다. 예고 없이「데미안」을 읽는 날은 그런 날이다. 응급 처치는 모든 상처가 짧은 시간에 낫고 앞으로 다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해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낫는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치유가 끝나고 나면, 아픔을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빨간약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의 세상은 그전과 같을 수 없다. 다시 어딘가를 다치면 빨간약을 찾고, 상처가 괜찮아지면 그 존재를 잊는다. 나에게 「데미안」은 읽고 나서 잊어야 하는 책이다. 새가 투쟁하여 알에서 깨어났으면, 알을 잊고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비행은 죽을 때까지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데미안」의 의미를 물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만약 「데미안」을 당신에게 선물한다면, '나와 함께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뇌, 웃음과 울음을 함께하며 나의 모든 것을 얘기하고 싶고,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평생 아는 사이가 되어 시간과 함께 익어가는 사이가 되자'라는 고백이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 적이 없었으며 당신은 이 선물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다.

아직 선물을 준 사람은 없지만 나의 진득한 고백을 책 한 권으로 대신하고 싶을 만큼의 마음을 담는 책이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는 분들께 읽으면 좋다고 추천한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이 책이 유명해서 서점에 가면 생각보다 많은 권수가 때문에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 좋은 책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17개의 번역서를 가장 유명한 구절로 정리해보았다. 사진과 함께 정리했으니 다음 기준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책을 읽었으면 한다.


※ 번역서를 고르는 주관적이고 가장 쉬운 기준※

1. 본인이 읽기에 거부감이 가장 적은 문체를 고르는 게 최우선이다.

: 번역에는 정답이 없다. 역자들의 실력 자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자신이게 잘 읽히는 문체는 분명히 있다. 과감하게 주관성을 갖고 나에게 읽기 편한 문장을 고르면 된다.


2. 말이 너무 딱딱하거나, 화려한 느낌이 들면 배제한다.

: 원문의 독일어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어가면 글이 딱딱해지고, 이해를 돕기 위해 어감을 다르게 쓰면 글이 화려해진다. 역자들은 오랫동안 공부하고 고뇌하여 글을 번역했지만 내가 읽기에 딱딱하거나 화려한 감이 있다면 배제하는 게 좋다.


3. 믿고 보는 출판사나 역자가 없다면 고르는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망설이지 마라.

: 사실 믿고 보는 출판사나 역자라는 기준이 모호하다. 세상의 책들은 그들만의 쓰임이 있고 작가의 인생이 담긴 책이므로 자체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고전 문학을 읽을 땐 네임카드를 우선시하기보단 본인의 시간을 투자하는 고르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고전문학은 한낱 유행으로 끝난 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읽혀 온 책이다. 한 번 사면 책장에 오랫동안 있는 만큼 빛을 발휘할 것이다. 지금 내가 읽으면, 나의 가족이 읽을 책이 될지도 모른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중에서 살아남은 책이라면 잘 고르는 시간도 투자가 아닐까.




[순서/ 역자 이름/ 출판사 이름]


1. 김시오, 브라운 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다.








(+) 동일한 역자, 다른 출판사

김시오, 한비미디어














2. 원당희, 교학도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3. 박민수, 꿈결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4. 뉴트랜스레이션, 다상출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5. 이순학, 더모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동일한 역자, 다른 출판사

이순학, 더모던














6. 엄인정, 매월당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7. 김그린, 모모북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8. 구기성, 문예출판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9. 김성화, 반니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10. 서상원, 스타북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바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이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11. 한수운, 아이템비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이 책은 커버에 쓰인 번역과 책 내용의 번역에서 문체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시는 글 내용의 번역을 썼습니다)


12. 박여명, 더디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상을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13. 전혜린, 북하우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4. 홍성광, 현대문학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15. 이상희, 책만드는집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6. 전은경, 푸른숲주니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7. 전영애, 민음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일러두기>

-출판된 책들을 정리한 날짜는 2020년 7월 29일입니다.

-제 독일어 실력은 독일 1년 교환학생 경험(2011) 및 독일어 자격증 Zertifikat Deutsch B1(2012)와 중등학교 정교사 2급 독일어(2016)에 준합니다. 개인적으로 학부생 수준보다는 높게 공부했으나 통번역사의 수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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