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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7. 2020

영어 발음에 자신이 있다고요?

발음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별 장식과 같다

독어식 영어 발음이 뭔가요     

영문학 소설 수업에서 발표를 마치고 마이크를 내리자 영문과 교수님께서 영어와 독어가 혼재된 발음을 한다는 피드백을 하셨다. 독어의 조음 방법과 영어의 조음 방법이 일정 부분 일치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한국인들만 하는 편이다. (실제로 당시에 내가 말한 말들 중에 무엇이 독어가 베이스이고 무엇이 영어가 베이스인지 모르겠다.) 유독 한국 사람들은 영어 능력 중 ‘발음’에 민감하다.    

  

외국 하면 미국. 미국 하면 영어. 대한민국에 영어교육 열풍이 초창기에 불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하와유 다음엔 아임 파인땡큐를 쓰는 최소 대립쌍(Minimal pairs)을 이루는 대화가 교과서를 지배했고 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수준에서는 조금 더 잘해 보이는 게 중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어를 조금 더 잘해 보이는 이미지는 90% 이상이 ‘발음’에 달렸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달리 미국식 영어 발음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부정할 수 없다. 이런 현상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러나 영어 발음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하기 전에 해당 외국어를 발화하는 화자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외국인임을 고려하는 사람도 잘 없다.


다소 반성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는 내 입으로 ‘발음’이라는 단어를 쓰며 누군가의 외국어를 말한 것에 후회가 있다. 그리고 내가 두 개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영어나 독어를 시켜보는 사람들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웃으며 넘긴 것을 반성한다.

      

발음은 일부일 뿐이다     

언어도 지능, 재능, 능력의 영역이다. 한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극히 옹호한다. 그러나 언어가 아닌 수리, 공간, 신체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한 사람에게 당장 가우스 함수의 연속과 불연속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외국어도 적당한 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칭찬과 무례의 경계를 생각한다면 영어 발음 하나로 외국어 실력을 단편적으로 가늠하는 관례도 줄어들 것이다.

원어민과 같은 발음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하려고, 나중에 잘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시절. 밥 먹을 때마다 눈으로 봤던 포스트잇.

영어는 언어다. 언어는 이론적으로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으로 구분한다. 발음은 ‘언어’라는 총체 중 음성학과 음운론이라는 하위분류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음성학이라는 기초 단위부터 화용론이라는 문맥적 사용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일본인들은 한글의 ‘ㄹ’ 받침을 발음하기 어렵다. 일본어라는 모국어가 구강 구조에서 쓰는 근육과 혀의 위치가 받침 ‘ㄹ’를 발음하기에 유용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발음을 잘 해낸다면 그마저 좋겠지만 내가 만난 그 어떤 일본인도 ‘ㄹ’을 잘 발음한다고 하여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어 발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경우는 다음을 고려해보자.

     

첫 번째, 미국인처럼 발음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음가를 구분하자.


당신은 다음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가?

    

butter [ˈbʌtə(r)]


우리나라의 교과서는 모두 미국식 영어를 기초로 시작한다. 그래서 [t] 발음이 특정 조건에 있을 때는 마치 [ㄹ] 이 들어간 것처럼 플래핑 하여 발음한다. 우리들에게 버터 발음으로 유명한 이 소리는 water 나 porter 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화자들 중 저 발음을 좋게(=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주 당연하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저 발음을 [밧-타]와 같이 발음하면 [버-러] 보다 환영하는 분위기가 적었다. 미국인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처럼 발음하면 좋은 발음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발음인가? 둘 다 IPA 기호로 쓴다면 방법과 사용 역의 차이일 뿐, 영어의 실제 음가이다.   

   

두 번째, 발음이 좋다는 기준은 철저히 영어를 외국어로서 배운 화자라는 것이다.    

  

원어민(native speaker)과 준원어민급(native-like speaker) 은 엄연히 다르다. 이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 또한 영어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은 한계를 느낀 것이 발음이다. 상대적으로 통사론과 같은 문법성이 강한 공부가 급했기 때문에 발음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못썼다. 그러나 음성 언어는 문자 언어보다 지속성이 낮기 때문에 무조건적 반응처럼 굉장히 빠른 시간에 발화해야 한다. 그 빠른 시간 동안 혀의 위치를 통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벗어나면 원어민처럼 하기 어려운 한 가지 영역이 발음이다. 이를 깨닫고 나서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모든 화자들은 아주 잘해도 원어민과 같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력을 포기하거나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자세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지금도 딱히 원어민과 비슷한 발음을 하지 못한다. 이는 많은 학자들의 결론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발음이 좋은 편이다. 이 부분만 생각해도 딱히 누구가 더 발음을 잘하고 말고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발음이 좋다기보단 공명성(Resonance)이 맑은 느낌이지만 발음이라고 퉁치는 게 좋겠다. 발음이 좋다는 것은 외국인이라는 범주가 전제된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별 장식이 빠진 다고 해도 트리는 트리이다   

언어는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술적 범주이며 발음은 여러 기술 중 하나의 하위 기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생들에게는 발음이 좋은 친구의 발음을 칭찬한다.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스크립트를 읽을 때 자주 시켜보기도 한다. 파일에서 나오는 원어민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워할 때 그 친구에게 대신 읽어 보라고 시킨다. 그리고 모두가 따라 하도록 만든다. 나이가 어릴수록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습관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미 나이가 있어서 발음을 고치기 어렵지만 여러분들은 충분히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가질 수 있다며 일부로 꼰대 같은 말을 쓰며 자신감을 북돋아준다. 나중에 신경 쓰려면 한도 끝도 없을 영역이 발음이라 쉽게 할 수 있을 때 잘 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발음은 마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마지막에 큰 별을 하나 예쁘게 올리는 장신구와 같다고 생각한다. 큰 별을 하나 올리는 것이 중요할까? 나무를 가다듬고, 트리를 꾸밀 주요 장식을 챙기며 장식을 빌드업하는 것이 중요할까? 트리에 큰 별을 올리면 보기에도 예쁘기도 하고 화룡점정을 찍은 느낌이지만 별이 없어더라도 크리스마스트리는 트리이다.



<참조 자료>

Mehmet S. Yavas (2011). Applied English Phonology, Second Edition

Brown, D. H. (2000).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 teaching. (4th ed.)

네이버 영어사전 https://en.dict.naver.com/#/entry/enko/1e295c0211e143b0b291676c4c4b5f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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