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노스텔지어
유예림 개인전 《조상의 지혜 (Ancestral Wisdom)》
2022. 12. 15 – 2023. 1. 28
갤러리 기체
경험한 적 없지만 그리움을 자아내는 ‘허구의 노스텔지어.’
책과 영화 등 각종 매체로 일찍이 이국의 문화를 간접 체화한 결과로 우리는 화려한 상점가가 즐비한 뉴욕 거리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도, 김이 펄펄 나는 료칸의 온천에 몸을 담근 채 눈내리는 삿포로의 정취를 상상하고 음미한다.
또한 그리워 한다. 모두가 한번 쯤은 경험해본 것 처럼.
‘그것을 세운 인부들의 노동, 그것이 위치하는 지역의 일조량/ 강수량과 같은 기상 상황, 그곳을 지나치거나 드나드는 수많은 이들의 서두름과 무관심, 각질과 먼지가 축적되어 있는’ (작가노트) 평범한 장소들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이상향으로서 늘 추구하고 욕망하는 ‘과거’가 된다.
작가가 이미지로 구현한 알 수 없는 과거와 그에 대한 그리움은 장소와 무관하게 늘상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들이며, 우리가 상상한 모습이 무색하도록 현실 직시적이다. 아스팔트 밑에 묻힌 노인, 이가 시릴지언정 오직 빈티지만을 고집하는 사람의 낡은 무스탕, 깨진 창문. 작가가 캔버스 위에 켜켜히쌓아 올린 허구의 레이어는 장소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과 흘러버린 시간의 궤적을 추적하며 작가만의 ‘과거’를 완성한다. 그리고 과거의 다른 이름은, 바로 ‘죽음’이다.
우리가 상상하던 로맨틱하고 황홀한 뉴욕의 거리와 고요하고 운치있는 삿포로에도 탄생,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그리고 죽음이 쌓여있다. 장소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상상하고 재구성한 과거 속에는 반드시 ‘사람’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을 보며 작가에 의해 조립된 터무니 없고도 모호한 상상의 장면, 즉 허구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추리하며 또 다른 허구의 레이어를 얹는다.
삼차원의 공간이든, 이차원의 공간이든
시간은 무엇이든 축적하고 공간은 무엇이든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