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을 알게 된 건 출근길에 친구가 보내준 한 유튜브 영상 덕이었다. 한 유투버가 샤르가오섬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서핑을 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부드럽게 부서지는 파도와 잔잔한 바다 위로 내비치는 반짝이는 햇살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날 꿈꾸게 했다. 이곳은 파라다이스 그 자체겠구나.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섬이라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얻기 어려웠고, 알아보고 자시 고의 과정이 불가했다. 그러나 '그 덕'에 아주 쉽게 여행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휴가 내기, 항공권 구매하기 그리고 숙소 예약하기.
Siargao Island, Phillippines
퇴근 후 세부(Cebu, Phillippines)로 향했다. 새벽에 도착해서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샤르가오(Siargao Island, Phillippines)로 넘어갔다. 필리핀 국내선은 처음 타 보았는데 공항직원들이 모두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며 친절해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었다. 내가 타려는 국내선 비행기는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비행기였다. 그 신기한 날개 너머로 내 눈앞에서 가방을 실는 작은 경비행기를 보며 내 몸도 함께 실었다. 비행기 안의 승객들은 모두 느낌이 비슷했다. 그을린 피부, 가벼운 옷차림, 끈으로 된 팔찌, 혼자 탄 승객들, 뭐랄까 서퍼 같달까.
The Villiage Siargao 숙소에 묵었다. 숙소는 엄청 깨끗하고 높은 천장에 이쁜 숙소였다. 시설과 직원들의 친절도까지도 모두 만족하나, 아쉬운 점은 시내와 서핑 스폿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툭툭(TAXI)는 시내 내부로는 20 페소면 다 이동하나 숙소까지는 항상 50페소를 달라고 했다. 숙소와 시내는 멀지만 단순한 직진 걸이기에 스쿠터를 빌려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다행히도 호텔 카운터에서 스쿠터를 빌릴 수 있기에 첫날부터 빌리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정도. 숙소에 도착 후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BBQ 치킨으로 첫끼를 해결했다. 널찍한 닭다리를 숯불 위에 올리고 부채질을 하는데 그 치킨 굽는 냄새가 나의 기다리는 조급함을 배가 되게 하였다. 한적한 식당, 나무 수저, 달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뜨거운 공기와 빽빽한 나무 숲 풍경 그리고 생긴 것도 말하는 것도 다 다른 외국인들. 모든 것이 이국적인 여행의 첫 시작, 그저 다 좋았다.
오후 3시가 되어 부랴부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서핑 스폿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곳의 가장 서핑하기 좋은 적기는 새벽과 해 질 녘이었다. 우리가 처음 간 시간은 비록 적기는 아니었지만 넘실대는 수준으로 첫발을 가볍게 담그기 즐거운 파도였다. Cloud 9과 Quick Silver는 서핑 스폿 이름이다. 세계적인 서핑 대회가 열리는 Cloud 9 스폿 바로 옆에는 부드럽고 쉬운 파도가 있는 Quick Silver가 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반짝이는 햇살을 둥둥 띄워대는 바다, 바다 밑 조약돌까지 훤히 들여댜 보이는 맑은 물 그리고 그곳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무리는 그림을 배로 아름답게 만들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보드를 대여할 수 있었고, 서핑 가이드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투명하고 넘실대는 물속에 첫 입수한 순간 뿜어져 나오는 세로토닌에 온 몸이 지배되었다.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한 서핑 자체가 주는 도파민 보다도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바닷물이 주는 녹녹한 세로토닌이 주는 행복감이 잔잔하고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나를 녹여낸다. 울렁불렁 부드럽게 넘실대는 파도에 몸과 보드를 의지한 채 첫날은 가벼이 서핑을 즐겼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계속 파도는 부드러웠고 여유로운 서핑을 즐길 수 있게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샤르가오에서는 서핑 후 맥주보다 서핑 후 아사이볼에 푹 빠졌다! 얼린 아사이베리와 바나나를 갈갈하여 나온 스무디에 각종 과일을 토핑 한 시원하면서도 상큼 달달한 디저트. 에어컨 없는 지붕 달린 야외 테라스에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해먹 의자에 누워 먹으면 또 그만한 신선놀음이 없다.
현지 여행사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떠난 샤르가오 인근 섬들도 방문하고, 달달달 스쿠터를 타고 온 섬 안을 비집고 다녔다. 스쿠터 기름을 채우려면 슈퍼에 가야 한다, 주유소가 아니라. 그러면 코카콜라병에 담긴 기름을 준다. 스쿠터 몸통을 만지작 거려가며 연료 입구를 찾던 우리를 본 지나가던 주민이 친절히 말없이 도와준다. 가끔은 하나 가져온 꽃무늬 옷을 입고 브런치 카페에 가서 비싸지만 깔끔한 아침식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수영복 위에 박시한 티셔츠를 걸쳐 입고 땋은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바닷가와 흙바닥을 활개 치고 다닌다. 바닷가에 뻑뻑해진 머릿결도 소금기에 건조해진 손발톱도 초콜릿 색으로 그을린 피부도 무엇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만 중요한 그 순간 행복하다. 가능케 한 자연환경과 이 휴가기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EPILOGUE
필리핀 보홀섬을 여행한 적도 있는데, 샤르가오섬은 서핑의 성지답게 서퍼 자유로운 분위기가 온 섬에 도처에 퍼져있다. 그 특유의 스피릿이 이 섬을 더 매력적이고 색다르게 만들어준다. 그 자유롭고도 한적한 섬에서의 휴가는 모든 것이 괜찮다며 나를 도닥이고 안아주는 느낌이다.
서핑 가이드의 윌슨과는 같이 파도를 타다 친구가 되었다. 마지막 그의 'Free house and free surfing everyday'이라며 프러포즈를 연상케 하는 제안에 깔깔깔 서로 웃고 말았지만 이 여행을 돌이켜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 중에 하나이다. 돌아온 직장 생활과 퍽퍽한 도시 생활에 지칠 즈음이면 그 제안이 날 상상케 하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펌을 해 단정하고 세련된 머리스타일을 유지할 필요도 아랫배를 조여내는 스타킹을 신을 일도 딱딱한 구두를 신을 일도 없는 곳. 투명한 하늘, 투명한 바다 그 사이 넘실대는 파도를 매일 탈 수 있고, 상큼 달달 시원한 아사이 볼이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곳. 현실적 계산은 집어치우고 로망이 담긴 마음으로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상상. 아직도 유효하려나, 그 약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