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이 Mar 31. 2020

파도 타러 포르투갈에 간다고?

유럽의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 포르투갈 페니쉬 Peniche

PROLOGUE

인스타그램에서 커다란 아니 거대한 파도를 타는 서퍼 영상을 보았다, 포루투갈 나자레(Nazare, Portugal). 사람이 개미만 해 보였고, 아랑곳하지 않는 나자레의 파도는 우주 같아 보였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고 세상에 이런 서퍼도 있구나, 탄식을 내벧았다. 찾아보니 포르투갈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좋은 서핑 스폿이 많았는데, 유럽에서도 이렇게 강렬한 서핑 스폿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당겼다. 그러다 나자레(Nazare) 옆에 페니쉬(Peniche)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발견하였다. 초중급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은 파도들이 기다리지만 북적이지 않고 고즈넉한 마을, 그 점이 바로 나를 이끌었다. 휴가를 받고선 바로 떠났다.


PORTO

9월의 포르투갈은 햇볕도 바람도 모든 것이 적당했다. 포르투(Porto, Portugal)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에서 하루를 보냈다. 스페인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푸릇푸릇이 어울리는 타일의 성당들은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유럽임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면으로 된 가벼운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치고, 단출한 단화로 걷고 있노라면 눈에 익지 않은 풍경과 더불어 설렜다. 오르막 내리막의 좁다란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곳곳의 길목들 사이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이 그 감동을 배로 물들였다. 특히 도오루 강(Douro River)을 건너 동루이스다리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그 시내를 멀리 바라보는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밤에도 가 보았지만, 햇빛을 반사시키는 강과 건너편 건물들이 반짝이는 낮의 풍경이 더 황홀하였다. 바람과 함께 흐드러진 나뭇잎 사이사이로 내비치는 햇빛은 편안한 여유를 주고 동시에 낯선 풍경 한가운데 이방인으로서의 긴장감은 흡사 설렘과 혼동되어 나를 한껏 고취시켰다. 포르투갈 특유의 달달하고도 풍미가 깊은 와인처럼.


다음날 오돌토돌 돌길 위에 캐리어를 끌며 고속버스(Rede Express) 터미널로 향했다. 포르투에서 페니쉬(Peniche, Portugal)까지는 버스로 5시간.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파도를 상상하는 마음이 가득 차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정이다. 어플로 티켓을 구매하는데 나이를 선택하는 박스가 나왔다. 국내에서 학생 혹은 성인 요금에만 익숙해진 와중에 여긴 성인이 Youth와 Adult로 나뉘어 있었다. 만 29세까지는 Youth 박스를 클릭할 수 있다.

youth : 젊음, 청춘, 청년



PENICHE

밤 10시, 엉덩이 뼈가 푹 꺼진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될 즈음에 페니쉬에 도착하였다. 버스에 내려 트렁크를 달달 끌며 숙소로 향했다. 바람이 차가웠고 깜깜한 어둠 어딘가로부터 온 사방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고층건물이라곤 하나도 볼 수 없는 작은 마을에 늦은 밤을 배회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그마한 바둑이가 나를 졸졸 쫓아왔다. 쿨한 척 글을 쓰곤 있지만 당시 그 낯설고도 어두운 거리가 얼마나 무섭던지 발걸음을 최대한 재촉하며 숙소에 다다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9시 30분까지 숙소 앞에 집결한다. 하나둘 모여든 이들은 나의 이번 서핑트립 동기들이라 칭할 수 있겠다. 숙소에 지내는 동안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대부분 바닷가에서 다함께 서핑을 하거나 누워있었고, 해가 져서 숙소로 돌아와서는 다함께 외식을 나가거나 식사를 만들어 먹었기에 다들 친해졌다. 여기에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 막 졸업하고 취직이 결정되어 여행 온 친구, 휴가를 받아 여행 온 직장인, 낭만의 추억을 쌓는 중인 커플 등등. 각기 배경도 다르고 국적도 달랐지만, 파도를 향하여 다함께 아담한 벤에 몸을 실은 우리들은 다같은 서퍼 혹은 서퍼 꿈나무들이다.


내가 묵은 Peniche Surf Lodge는 숙소도 제공하고 서핑 트립도 제공하였다. 여긴 아일랜드에서 온 Duncan과 Claire 부부가 운영하며, 아들인 Dane은 서핑 선생님이다. 매일 아침 숙소 앞에 다 같이 모이면, 본인 니즈에 맞는 슈트와 보드를 골라준다. 그리곤 주인 부부와 Dane이 그날그날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있는 해변으로 태워준다. 바다 앞 한적한 곳에 진을 치고 자유롭게 하루를 보낸 뒤 그들과 함께 오후 4시쯤 다 함께 숙소로 돌아온다. 난 돌아오는 길에 Duncan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재잘거리곤 했다, 그는 그토록 유쾌할 수가 없기에. Claire는 친절하고 발랄해 언제든 친근하게 대화하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으며, Dane은 말할 필요도 없는 훌륭한 서핑 선생님이다. 그토록 칭찬으로 무장한 인내를 가지고 보드에 올라탄 나를 연신 격려했으므로. 한 번은 파도 타는 모습이 너무 보고 싶다고 졸라 숏보드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를 보다 턱이 빠질 뻔했다. 어벤저스 가족의 인도 덕에 정말이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http://www.penichesurflodge.com


해변가 적절한 곳에 진을 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셨다. 포르투갈의 커피는 많이 짙었다. 낑낑대고 슈트를 입고 내 키를 훌쩍 넘는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나면 파도를 한번 가늠해보았다, 이러면 꽤 번듯한 서퍼가 된 듯한 착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은 수업을 듣고 오후는 자유롭게 서핑을 하며 연습하였다. 넘실대는 파도와 내 몸뚱아리 사이에 걸쳐진 보드 하나에만 의지한다. 그토록 생각이 많은 나의 머릿속은 단순 그 자체가 되고, 파도는 내게 비현실적인 쾌락을 안겨준다. 이 반짝이는 바닷물만이 현실일 뿐이다.


9월 Peniche의 파도는 초보에게 약간 도전적일 수 있는 내가 원했던 적절한 파도였다. 그리 부드럽지도 그리 세지도 않은 파도. 파도가 오는 빈도가 짧아 힘들긴 하였지만, 해외 특훈이니까. 아직도 꼬꼬마 수준이라 Dane 선생님의 일어나라는 사인에는 곧잘 일어났지만 혼자서는 아직 파도를 볼 줄 몰라 어려웠다. 운 좋을 때 한 번씩 파도를 타는 수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한 고민은 대체 어느 타이밍에 패들링을 하고 대체 어느 타이밍에 테이크 오프를 해야 하는지였다. 파도가 부서질 때 일어서는 건지 부서지기 전에 일어서는 건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결재를 받기 위해 상사가 기분 좋을 타이밍을 엿보는 일도,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명받아 고민할 일도 없다. 아침에 오늘은 대체 뭘 입을지 이번 주에 입지 않은 옷을 찾아 고민할 일도, 점심에 오늘은 대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일도, 운동시간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퇴근시간 눈치싸움을 할 일도 없다. 그저 이 스티로폼인지 나무인지 판때기 위에 언제 어떻게 일어설지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이 순간이 그저 행복하다.


바다에서 엉차엉차 파도와 씨름을 하고 나오면, 십분 정도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코에서 소금물에 졸졸 흘러나온다. 따뜻한 겉옷을 걸치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다. 잠이 깨면 국경과 세대를 넘어서 파도만 바라보고 모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 다시 보드를 안고 바다로 들어간다. 오후에도 파도를 몇 번 못 잡은 초보이지만 스스로에게 심심찮은 칭찬을 보내며 보상으로 시원한 맥주를 선사한다. 그러고 나면 벌써 하루가 다 간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친구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해 먹거나 외식을 한다. 밤 10시가 되면 녹초가 된 몸을 누이고 금세 잠이 든다. 그렇게 평소에 잠을 설치던 나도 세상모르게 기절했다.


긴 글을 써 내려갔지만, 결국 Peniche에서 하루의 일과는 서핑과 휴식의 반복이라는 것. 보드에 일어설 순간만을 고민하면 되는 곳. 선택의 폭이 많이 필요 없는 그 일상에 낯선 장소에서 보내는 이방인의 여유라 더 즐겁다는 점으로 짧게 요약할 수 있겠다. 잔잔했다, 바쁘고 걱정 많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더욱이.


EPILOGUE

여행의 마지막 날에 내 핸드폰은 고장이 났다. Porto보다도 내게 더 깊게 물들여진 Peniche의 바다를 담은 사진들이 없는 게 정말 아쉬웠다. 아직도 그 여행을 추억하면 두 눈은 허공을 더듬다 감고선 쉴 새 없이 반짝였던 바다와 하루 종일 함께 했던 파도 소리를 느낌으로 회상한다. 서핑 후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맥주의 톡톡한 기억은 덤으로. 그래서 더 아득하면서도 동시에 아련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나만의 기억 속 여행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