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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Nov 03. 2019

'모 아니면 도'인 연애..?

와 그 속사정

친구와의 술자리에 있어 관계가 주제가 되면 나의 소신이랄까 연애관이라 함은 "모 아니면 도"라 일컫어졌다. 애초에 좋으 좋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는 아니라고 말하는, 시작도 빠르고 그만큼 정리도 빠른. 미적지근한 사이도 싫고, 여지를 남기고 두고 보는 사이도 싫다. 좀 더 두고 보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일찍이 "도"라 여겨지면 정리했고, 좋으면 돌직구를 날려가며 밀고 들어가 시작하는 "모"가 나의 주였다. 그것은 나의 급하디 급한 성격이나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런 날 두고 친구들은 가끔 연애 바보란 소리를 하지만 내심 나는 스스로를 쿨하다 여겼다. 그러다 그를 마주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 연애관에 이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만의 시간이 느리게 갈 것 같은 사람. 자신의 원을 벗어난 세상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 그와 그가 아끼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그 원 안의 삶을 만끽하는 게 자연스럽고 그리 살아가는 자체가 인 사람. 그렇다고 세상과는 동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제지만 완연한 가치의 존재로 서 있는 사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과 타인들에게 눈과 어깨가 좇기지 않고 편승되지도 않는 사람. 분명히 일개 밀맥주이지만 오렌지 향이 풍부하고도 자연스러워 본연의 독창성(originality)을 머금은 호가든 맥주처럼 말이다. 그게 그를 향한 첫인상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숨기지 않고 애정 하는 그 원 안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발을 디뎌보고 싶어 졌다.

 

앞서 말한 불같은 제스처 덕에 나는 관계의 시작에 있어 오만한 편이고, 이번에도 그 자신만큼 손쉽게 그의 원 안으로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초대일 뿐 그 원 안으로 물들고 깊숙이 발을 디디기 위해선 그만큼의 이해이랄까 희생이랄까 시간과 공이 필요한 건 당연한 단계였다. 하지만 그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앞으로가 잘 그려지지도 않았고, 그런 사람에게 스며들기 위해선 더욱이 더 많은 공이 필요함을 암시했다. 오른 발목을 담근 그 순간 나는 불안해지고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내 목구멍 위로 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매력을 느끼고 몸저 들어서고 싶은 관계였음에 확신을 가졌었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이건 "모 아니면 도가 아닌 관계"인 것을 알게 되자 뒷걸음질치고 싶어 진 것이다.


이 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당황했고 대체 무엇이란 생각에 시간을 보냈다. 떠오른 속사정은 너무도 진부해 코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과거로부터의 상처. 천천히 그리고 깊은 심호흡과 함께 공들였던 시간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 번에 에너지가 모조리 빠져나가버린 듯한 공허함에 지배당했던 과거.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감정소모에 지쳤던 경험들. 공들임의 끝에 다가올 배신감, 상처, 두려움. 내겐 방어기제가 필요했고 그것이 "모 아니면 도"라는 내 두 가린 신조였던 것이다. 애초에 좋아/싫어를 결정해버리고 입 밖으로 내벧어 버리고 정리하는 편이 훨씬 쉽고 상처 받을 일도 만들지 않는다. 시간낭비로서의 방어기제가 아니라 이건 순전히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발현된 것이었다. 좋으면 빨리 달려가서 안정을 찾고 싶었고, 아니라면 상처 받기 전에 재빨리 도망쳐 버리는.


결국 나는 공과 시간을 들인 관계에서 돌아올 부메랑에 묶인 쪽지를 열어볼 자신이, 좋든 안 좋든 그 결과를 볼 깜냥이 없었 것이다. 던지기 전에 정말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모'인 부메랑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지금 나를 이렇게 옳아 메고 있는 두려움을 마주하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난 정말 쿨한 게 아니라 그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눈 앞에 둔 맥주 한 캔에 그려진 오렌지 그림을 보며 자기 연민에 빠지 완벽한 순간이었다.


한 달 전 서핑을 하다가 오른쪽 다리가 돌바위에 심하게 쓸렸다. 보라색도 아닌 시커먼 색의 피멍이 잔뜩 들었고, 허벅지 한가운데 커다란 피딱지는 떨어졌지만 아직도 상처 자국이 남았다. 그렇게 다리를 휩쓸리고 나서는 많이 두려웠다. 바다에 들어가서도 멀리서 봐도 아주 안전하고 부드러운 파도만 오면 일어났다. 아직은 깨지지 않은 파도지만 부서지게 생긴 파도일 것 같으면 보드 위에서 일어설 생각도 않고 꼼짝 않았다. 물론 그 파도가 보기와 달리 부드럽게 나를 넘실하고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서핑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가리지 않고 보드 위에 일어서고 도전하고 신났는데, 이제는 파도를 타기 전에 시작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파도 모양만 보고 정했다. 재미는 잔잔할지라도 그 편이 안전했고 다치지도 않았다. 관계에 있어서 지금의 나는 이것과 같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이 무서워 쿨한 척 '모 아니면 도'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계, 걸, 윷인 관계에 공을 들이고 시간을 부어 ''를 만들 생각은 미처 못하고 있다. 만약 '모'가 되지 않으면 공을 들이고 시간을 붓는 동안 쏟아낸 내 마음이 너무도 아플 것임을 아니까.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 모 아니면 도 자시고인지 관계에 대한 상처 받기 무서운 건지 뭔지 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를 직시한 것만으로도 큰 발걸음이겠지만,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것을 꼭 들춘 것만 같아서 더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의 약점을 들킨 것 같아서 마치 누군가에게 말이다. 지금 그와의 관계에서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도"라며 도망처 버릴지 아니면 진지하게 시간과 공을 두고 결과가 어떻든 직면해볼지 모르겠다. 뭐, 소설이라면 후자겠지만 현재의 나는 일단 회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스무몇 살 첫 연애하듯 용감하게 마주하기엔 그간 아픔이 많았나 보다고 도망치려 등을 돌리기 시작한 못난 내게 그렇게 자기 위안하고 싶다. 어딘가 잠시 그늘 밑에 숨고 나서 숨을 고르고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내가 오늘 깨달은 것에 대해서. 앞으로의 용기에 대해서.


일단 그와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게 되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아직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지 모르니까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 독감주사를 맞은 왼쪽 팔이 아직도 얼얼하다. 주사는 미리 세균을 내 몸에 침투시켜 독감 세균에 대한 내성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팔이 아직도 아픈 것을 보니 내성이 만들어지지 않은 내 안에선 아직도 무언가 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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