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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Nov 18. 2020

괜찮아 우울해도, 우울한 상황이니까 우울한 거지

내 맘 같지 않는 요즘을 보내고 있는 자신에게

올해 나도 코로나 영향으로 수입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역에 대한 자존감도 떨어져 갔다. 내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자조 섞인 우울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와중에 오늘은 유독 더 내 맘 같지 않는 요즘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우울해하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기운 없이 소파에 드러누워 비스듬히 TV를 보는데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장기하가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네의 인생은 파도와도 같다고. 파도가 오면 오는 데로 나가면 나가는 데로 바닷가에 누워있는 것이 인생과 같다나. 저것도 성격이 그래야 가능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TV를 끄고 일기장을 꺼냈다. 대게는 특별한 일이나 깨달음을 쓰지만 한없이 저조한 기운에 오늘을 하소연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울하다 못해 서러워서 어디다가 토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어디다가 전화해서 설명할 힘은 없었다.


마구마구 써 내려갔다. 오늘 나를 서럽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서너 가지의 에피소드들을. 생각보다 더 기분이 나빴나 보다, 볼펜이 쉬지 않고 쉭쉭 써내려 져 가는 걸 보니. 쓰고 나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다. 나 스스로가 자초한 일에 자조하는 일도 있었지만 또 그저 들이닥친 막막한 어떤 상황에 서러웠던 일과 미워하던 의 쾌재에 질투하는 일도 있었다. 첫 번째 일은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이지만.. 오늘은 통제 밖의 또 다른 우울한 일들이 더 생긴 재수 없는 날이다. 그저 내게 펼쳐진 그 일이 서러우니까 난 서럽다고 느낀 것이고, 내가 무소유의 부처가 아닌 이상 미운 사람의 기쁜 일이 질투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 나는 오늘 우울하고 슬퍼도 되는 날이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드라마도 아니고 다른 사람 얘기도 아니고 내 얘기인데..!


앞서 TV에 나왔다는 파도가 치고 나가는 바닷가에 그냥 누워있는게 인생이란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른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바닷가에 누워있다가 파도를 맞았다. 파도는 내가 일으킨 게 아니었다. 달이 자전인가 공전인가 어떤 작용하느라 생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통제 밖의 일이니 맞은 파도에 아파하고 우울해해도 되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옥죄어 자조하거나 동굴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파도를 치는 시기도 방향도 사람마다 다 다른데, 요즘의 내겐 파도가 그냥 그렇게 생긴 것 뿐이다. 일기장을 앞으로 돌려보며 무지무지 기뻤던 날들의 글도 읽어보았다. 내 통제 밖의 일로 행운이라며 행복해하던 시기가 있었다. 파도는 매일 치지 않고 또 시기가 지나면 걷힐 것이란 걸 반증하는 나의 역사였다. 기록해 두길 잘했다. 행복한 시절이나 우울한 시절이 정도를 넘지 않도록, 되새기게 해 주니까.


당분간은 좀 우울해도 냅두자. 기분 좋은 시기가 또 찾아올 테니까. 내 통제 밖의 상황들에 너무 미워하거나 미련을 두지도 말자. 또 그 상황들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감정들인데 부정적이라고 너무 자신을 나무라지 말자. 오늘 하루종일 너무 우울했던 자신이니까 밤 열한시 삼십분인 오늘이 조금이라도 남은 이 시점에 너그러이 나를 봐주자. 조금 내려놓아 주자. 더 우울해하느라 못 자지 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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