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이 Sep 11. 2018

동거 시작

고양이 한 마리

어릴 때부터 나는 꼬물이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다. 복실복실한 앞 발, 살랑거리는 꼬리 그리고 야무지게 앙 다문 입. 하지만 하루에도 한 번 이상은 바닥에 걸레질하는 엄마에게 있어 동물의 털은 적이었다. 하루는 엄마 몰래 복실복실한 동네 똥강아지를 집에 데려왔다가 그 아이가 온 집 안을 활보하며 똥을 싸지르는 탓에 고무장갑을 끼고 나타난 엄마에게 바로 쫓겨났던 기억이 고스란하다.


그로부터 어느새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아담하지만 오롯한 나의 독립된 공간이 있고, 내 몸뚱이를 먹이고 입힌 뒤에도 취미생활을 즐길 만큼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여유도 생겼다. 그것으로부터 온 자만 때문이었을까, 나만의 고양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쉽게 그 아이를 데려왔다.


2016년 여름이었다. 참 더웠고 참 습했다. 보통 머리를 묶지 않는데 그날따라 치렁거리는 긴 머리가 거슬려 한껏 높이 묶었던 날이었다. 여름휴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나름의 새로움을 꿈꾸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 그 날 나는 그 아이를 만났다. 겁에 질리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두 눈으로 나를 훔쳐보았다, 안 그러는 척하면서. 한참 피해 다니던 아이는 얼마지나지 않아 내 뒤로 와서는 한쪽 앞발로 나를 콕 눌러보았다. 윤기 있는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의 털을 쓰다듬자 부드럽고 따뜻한 심장의 콩콩 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녀의 엉덩이를 톡 건드리는 순간 초록빛 가득한 두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그 작고 귀여운 몸집을 소유하고 싶어 졌고, 자신이 성인이란 오만감에 훌쩍 나의 공간으로 데려왔다.


그녀와 함께하는 삶은 순조롭고도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쓰다듬으면 골골송을 부르며 소복이 내 품에 안겼다. 누워서 노트북을 켜고 있노라면 자꾸 키보드위에 올라가 날 방해하더니 이내 무관심에 지쳐 내 왼팔에 매달려 잠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앞발로 문을 두드리다 내가 나오면 얌전히 문 앞에 앉아 날 기다렸다는 듯 아무 짓도 안 했다는 듯 나를 올려다본다. 세면대에 물을 틀고 세수를 하면 옆으로 올라와 앞발로 물줄기를 쓸어 자신의 목을 축였다. 주말에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있으면 씻지 않은 내 머리를 핥곤 해 그 애정 어린 고양이의 표현에 넋이 나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려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외출이 점차 늦어지고 짧은 출장을 가는 것에 대해 '고양이는 개보다 독립적이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무뎌졌고, 그 긴 외출 후 돌아온 현관 앞에는 건물 관리인의 두 장의 안내장이 붙어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