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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by 콩이 Sep 13. 2018

동거 시작, 그 이후

밤새 복도에 울려퍼진 고양이의 울음소리때문에 피해 입은 이웃의 신고를 받았으니 해결(?)하라는 메시지였다. 현관문 앞에 앉아 밤새 사람을 그렸을 울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무서워서였을까 아님 돌아오지 않는 나를 향한 걱정어린 그리움이었을까. 뭐 어떤 이유든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애초에 성인이 되었다는 오만한 자신감으로 아이를 데려왔으면서 이토록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힐난할 수 밖에 없었다. 이웃에게도 아이에게도 계속 괴로워하고 미안해했다. 이후부터 나는 절대 아이를 밤에 혼자 두지 않았다.


어느날 슬픔이 나의 그릇을 넘쳐흘러 입 밖으로 터져 나와 방 안을 가득 메우던 날, 그 어린 고양이는 내 곁을 지켰다. 눈물 콧물 쏙 빼느라 검붉어진 얼굴로 하염없이 목 놓아 우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장난기 많던 어린아이가 미동도 없이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말이다. 그렇게 잠들고 일어난 내 얼굴 옆에는 그 아이가 항상 으르렁 소리 내며 사냥놀이를 하던 생쥐 인형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휴지라던지 따뜻한 우유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위로였다. 감동받은 나는 부은 두 눈을 꿈뻑이며 그 아이가 보ㄴ 앞에서 냠냠 생쥐를 맛있게 먹고 힘이 솟아오른다는 듯 기지개를 켰었다. 그 날 이후였을 것이다, 이 아이는 내가 돌봐야 하고 키워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젠 나와 함께 살아가며 보호하고 보호받는 서로의 보호자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혼자 바닥을 구르고 밤새 문 앞에서 탈출을 바라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중성화 수술은 개복해야하는 큰 수술이란 말에 이 작은 몸에 칼대는 잔인함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양이 자궁에 병이 나게 되고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다는 동물병원 선생님의 말씀에 결국 결정하게 되었다. 수술을 하고 집에 온 날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자꾸 픽픽 쓰러졌다. 이틀을 내리 굶었다. 저 세 뼘도 안되는 작은 몸에 손가락 두 마디가량의 상처는 얼마나 큰 상처일까, 나는 상상도 못 할 아픔을 견디고 있는 거겠지. 마취가 풀리고 나면 아랫배가 이따금씩 저려 오는 이유 모를 아픔에 얼마나 괴로울까 이 작은 아이는. 하루 종일 얕은 숨을 고르며 누워있는 아이가 불안해 자다가도 일어나서 숨은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입가에 물을 묻혀 주고, 지친 그 아이의 등을 쓸어주곤 했다. 내가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안 당했을 텐데라는 괴로움도, 내가 아파서 밥도 안 먹고 누워있을 때 부모님은 항상 이런 마음이었을까라는 죄송스러움과 감사함도, 이 아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더 큰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씩씩한 마음도 모두 그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다.


아픈 아이를 지켜본 뒤로부터 한 생명을 데려온 일은 얼마나 큰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의 수명은 대략 15년이라고 한다. 벌써 세 살 먹고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내가 감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아주 나중에 아이가 늙어서 잘 걷지도 못하는데 내가 출근해야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가끔 든다. 이 아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상실감을 안길 때 어쩌지?라는 먼 생각마저도 든다. 무서운 상상의 꼬리를 그만 자르고 행복한 상상을 하자고 마음 먹지만, 결국 이 무거운 행복감 그리고 유한된 즐거움으로 그렇게 계속 같이 살아간다.


2주간 장기간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고양이나 개의 털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엄마에게 부탁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고양이와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무릎 위에 올라와 골골거리는 아이의 정수리를 매만지고 계셨다.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대다가도 사료를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 냥이에게 점점 마음을 뺏기고 계셨다. 다시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던 날, 부모님이 그러셨다. 이상하게 아직도 다른 고양이는 안 이쁜데 우리 아이만 그렇게 이쁘다고, 내 새끼의 새끼라서 그런가 참 이쁘다고 사랑스러우니 다음 추석 땐 좀 더 빨리 데려 오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더 늘어났다.


폭풍처럼 더웠던 여름의 하루는 쨍쨍거리는 햇볕 아래 높이 머리를 묶은 채 그녀의 동그란 눈을 처음 마주했던 그 날을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첫 만남이란 여름의 기억을 뒤로한 오늘의 가을날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한 손님 중에 아들과 동행한다더니 알고 보니 강아지를 데려가는 일을 알곤 세상이 웃기는 짬뽕이 되어간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 짬뽕이라던 세상에서 나는 국물에 흠뻑 절여진 통통한 오징어인지 죽순인지 모를 행복한 짬뽕의 하나가 되었고, 우리 고양이는 그 짬뽕의 목이버섯쯤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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