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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Lee Mar 05. 2024

1%

우리가 정말 99%일까

너와 데이트 하는 시간들은 즐거웠다. 여름이면 시원한 신촌역 6번출구 계단 앞에서 만나곤 했다. 너는 아이스크림 먹길 좋아했다. 나는 바닐라빈이 콕콕 박힌 고급 아이스크림을 양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너는, 슈퍼에서 파는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했다. 너의 자취방에서 데이트를 할 때는, 먼 길을 돌아 할인율이 높은 곳을 찾아가곤 했다. 나는 40% 할인해주는 집 앞 슈퍼를 가자 졸랐지만, 너는 50%하는 곳을 가야한다며 발길을 보챘었다. 고생 끝에 찾아간 럭키슈퍼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쮸쮸바 꽁다리를 나눠먹으며, 환히 웃곤 했다. 


너의 자취방에 있다보면 우울해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 햇볕 받는 곳으로 이사가자고 말했지만 그럴 때면 너는 항상 나중에라며 말을 돌렸었다. 할 것이 없는 우리는 하루 종일 티비와 함께 했지. 우리가 함께 아침을 맞을 땐, 아침방송은 보지 못했다. 너는 정오 뉴스가 할 때쯤 깨어나곤 했었다. 그렇게 깨선 우리는 가만히, 힘 없이 드러누워서 함께 뉴스를 보며 이야길 나눴다. 내가 힘없이 뉴스엔 사람 죽는 이야기만 나와. 스크린도어에서 또 사고가 났대,라고 공허하게 이야길 할 때면 너는, 안됐네. 그치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삯값을 줄여서 지하철비를 안올리는 건데. 1%가 희생하면 99%가 행복해지는 법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너의 이런 대답은 스크린도어 사고에도, 반도체 사고에도, 혹은 그동안 억눌리고 억눌린 것이 폭발했던, 여느 노동시위가 이어지던 때에도 같았다. 나는 어쩐지 소름이 끼쳤지만, 애써 너의 반지하 방에서 나오는 한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너는 언제나 그 1%만 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인생은 운,이라면서 너는 인생을 즐기자고 말했다. 그 운없는 1%에 해당하지 않는, 듯했던, 우리는 즐겁게 매일의 데이트를 즐겼다. 물론 데이트 일정은 자주 어그러지기 마련이었는데, 예컨대 저 멀리 꽃축제를 보러가기로 한 날에 마트에서 두루마지 휴지를 싸게 팔기라도 한다면 너는 꼭 그곳을 들렀다가 가야한다고 우겼다. 저녁엔, 미처 팔리지 않은 오뎅이며 우유를 사러 마트가 닫기 전에 급히 돌아가야 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너는 과연 99%의 행복한 사람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너와 내가 99%의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와서, 그래서 변할 수 없던 게 아니었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운좋게 산 식어빠진 튀김을 먹으며, 너와 나는 언제쯤 이 퀴퀴한 반지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의 일급과 내 비정규직 월급을 아끼고 아껴 저축해도 우리가 햇볕을 받으며 살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너와 내가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서 데이트 했던 그 날을 기억하니. 그 날 너가 읽던 책 서문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사회는 그 누구의 혼자 힘 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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