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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와 연필

<은중과 상연> OST

by 빨간우산

노트와 연필


- <은중과 상연> OST 수록곡

- 작곡&작사: 김장우&어영수 / 노래: 서리(Seori)


나는 연필과 같이 하루도쉬지 않고 적어왔네 나의 이야기들

떄론 기쁨의 노래 때론 아픔의 고백

이젠 잠시 쉬어 가려고하네 우리의 발걸음


한자한자 쓰면

언젠간 아름다운 책이 되겠지 한장한장 넘기다 보면

바라던 꿈이 되어있을거야 우리


너는 종이와 같이 항상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네

이젠 잠시 덮어 두려고하네 눈물 마를때까지


한자한자 쓰면

언젠간 아름다운 책이 되겠지 한장한장 넘기다 보면

바라던 꿈이 되어있을거야 우리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OST에 수록된 이 곡은 은중과 상연이 해후하는 마지막 신들에서 주로 흘러나오는 노래다. 드라마 작가가 된 은중이 자신과 상연의 오래된 애증의 관계를 시나리오로 쓰게 되고, 상연은 죽기 전 자신이 쓴 일기가 담겨있는 서랍의 열쇠를 은중에게 건넨다. 결국 (극 중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은중은 상연의 일기를 참고하여 자신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되고, 그 시나리오가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 곧 <은중과 상연>이다. 그러니까 <은중과 상연>에 등장하는 주인공 은중이 자신의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라는 재미있는 설정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런 설정을 염두에 두고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56.png <은중과 상연>을 쓰고 있는 드라마 작가 은중


가령 드라마 중간중간 등장하는 은중과 상연의 나래이션은 단지 드라마의 전개를 돕는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러니까 그 나래이션들은 상연의 일기장에서 빌려온 말들로서, 은중의 시나리오에 독백으로 삽입된 형식인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목이 <은중과 상연>임에도 불구하고 왜 은중의 관점에서만 드라마가 서술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상연을 상연의 입장에서 다루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보는 내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연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관점을 단지 독백 나래이션으로만 처리한 것을 두고 이 드라마의 진짜 작가(송혜진)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서 상연이 자신의 일기를 은중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작가(송혜진)의 주도면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가졌던 그 아쉬움이 일거에 설득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설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설정을 감안하고 드라마를 다시 한번 보게 되면, 이 드라마가 은중을 화자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연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틈틈이 노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독백이 가진 진실의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은중의 상연>이 아닌 <은중과 상연>이었다는 것을 결국은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과연 완성도 높은 작품은 두 번 보게 되면, 그 완성도와 디테일에 이토록 속속들이 감탄하는 쾌감을 얻을 수 있다.


60.png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전하는 상연


드라마의 완성도는 OST의 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은중이 상연과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의 심정이 담긴 편지와 일기를 건네는 마지막 씬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의 가사는,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미움의 역사를 스스로 써 내려가고 있으며,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로 써 내려감으로써 그 모든 아픔과 고통들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는, 삶이 예술이 되는 아름다움을 담담하게 읊조리고 있다. 그들의 삶과 그 삶을 써 내려간 글과 그 글이 발하는 승화된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속에서 글을 쓰는 두 주인공을 통해, 그리고 그 이야기의 배경에서 흐르는 음악을 통해,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132271591.1.jpg 이야기가 된 그들의 삶과 인연


우리의 삶은, 타인과의 관계는 힘들고 어렵다. 때론 상처받고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 그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더 깊고 단단한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글로 쓰고 이야기로 만들고 또 그런 작품들을 읽고 보는 게 아닐까. 삶은 이야기와 예술을 통해서만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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