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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과 열정을 가진 노년이 되는 꿈

정미조 님의 공연이 나에게 안겨준 화두

by radioholic

재즈클럽 야누스가 압구정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광화문으로 건너와 재개관을 했다. 가보고 싶었지만 강남이라는 위치가 주는 거리감에 그저 동경만 하고 있던 곳이, 회사와 집에서 멀지 않은 지역으로 와준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일은... 리오프닝 페스티벌의 공연자 명단에 정미조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공연 소식을 접하고 급한 마음에 야누스에 문자를 보내 예약 가능여부를 확인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나에게 온 답장은...

안타깝게도 17일 공연은 예약 마감되었습니다


문자를 받은 당일엔 나의 느린 손을 한탄했지만, 공연 당일에 현장표가 소량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침 집에 있던 와이프가 일찍 줄을 서준 덕분에 공연을 볼 수 있었다.(감사합니다~ 부인) 공연장은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로 가득 찼고, 마침내 정미조 님이 무대에 등장했다.




그녀는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섰다. 짙은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아우라를 가진 그녀는, 여유 있는 웃음으로 관객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에 가벼운 농담을 얹어 인사를 건넸다. 이런 무대는 수백번은 서봤다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이윽고 전주가 흐른 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자 재즈클럽 특유의 웅성거림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석별'과 '엄마의 봄'을 불렀을 때, 관객석 곳곳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노래와 목소리가 사람들을 울리는 장면은 볼 때마다 정말 신기한 마법처럼 느껴진다.


노래가 시작된 후의 그녀는 조금 전까지 부축을 받던 노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7번 국도'를 부를 땐 보사노바 리듬에 맞춰 살랑살랑 흥겹게 몸을 흔들었고,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로 시작하는 '개여울'의 인트로에는 듣는 이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리고... 격정적인 몸짓과 함께 앵콜곡인 'My way'를 부르는 그녀의 카리스마는, 과연 저분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그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게 만들 정도의 감동이 있었다. 보는 이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그녀의 몸과 마음 어디에 숨겨져 있던 것일까.


그녀의 My way에는 거장만이 보일 수 있는 위엄이 있었다




1부와 2부 사이 휴식 시간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 부부 역시 집에서 가져온 LP와 CD에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섰고 마침내 우리의 순서가 되었다. 사인을 받으면서 뭔가 건네고 싶은 말들이 있었는데, 가까이서 마주한 그분의 기품 있는 모습에 섣불리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약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른다는 게 참 힘든 일일 텐데, 잠시 쉬는 시간에도 지친 내색 없이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성심껏 맞이해 주는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참 품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작년에 발표한 앨범의 제목인 '75'라는 나이를 넘기셨음에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서 엄청난 에너지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들였을 노력의 크기를 난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영광이었습니다... 진심입니다...


정미조 선생님의 공연을 보고 난 뒤 난 과연 품격 있고 열정적인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를 내내 생각하고 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몸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기력도 떨어질 나이가 되어도, 무언가에 혼신을 다해 몰입하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공연장에서의 그녀처럼 평소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기력이 없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그런 노년기를 보내고 싶다. 그런 행복한 황혼기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보려한다.


앞으로 내가 일상에서 지치고,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할 때가 오면 가끔 클럽 야누스에 들러봐야겠다. 무대에서 무아지경으로 몰입하며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얻곤 하니까. 그런 점에서 클럽 야누스에서의 정미조 선생님의 공연은 요즘 살짝 침체되어 있던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부디 야누스가 광화문에서 오래오래 정착하기를, 그리고 정미조 선생님이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다음 앨범은 또 언제 내실건가요 선생님^^


https://youtu.be/dhqdAwD6MVc

'귀로'에서의 기타 선율과 정미조 님의 목소리의 조화는... 정말 환상적이란 표현밖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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