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비 때문이다
오늘의 날씨를 누가 믿느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지 말아요
빗물이 내리면 눈물이 흐르는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10CM, '10월의 날씨' 중)
어제 정시 퇴근을 위해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야무지게 사무실을 박차고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비는 밤부터 내린다고 했는데... 결국 궁시렁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우산을 챙기고 나와 지하철역에 가보니 지하철은 방금 떠난 뒤다. 정시퇴근은 개뿔.
어젠 유난히 회사에서의 시간이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나쁜 일이 있던 건 아니지만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꿉꿉한 사무실 공기와 건조한 형광등 불빛에 온통 짓눌린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이게 다 연휴부터 시작해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내리는 비 때문이다. 화창해도 모자랄 10월의 날씨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4계절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이젠 정말 예전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고, 이제 우린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극한 환경의 틈바구니에 낀 막간의 환절기를 봄과 가을이라 칭하며 간신히 즐겨야 하는 신세가 된 것 같다. 그 잠깐의 좋은 시간마저도 쉴 새 없이 내리는 비가 망쳐버리니 박탈감이 너무 심하다.
이렇게 가을이 비로 얼룩져서 우울할 때, 10cm의 '10월의 날씨'만한 노래도 없다. 이 노래를 본격 기상청 디스곡이라고 꼬집은 댓글만큼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아름답기만 한 가을의 하루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한바탕 소나기를 맞아버린 그 황당함과 어이없음, 그리고 그 와중에 비와 얽힌 슬픈 기억까지 생각이 나버리면 그날은 그냥 망한 날이 되어 버리니까.
요즘처럼 밝고 감미로운 노래만 부르는 지금의 10cm는 사실 나에게 딱히 매력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0cm를 놓지 못하는 것은 둘이었던 시절에 불러준 노래들의 찐득하고 섬세한 감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가을에 내린 비 때문에 우울했다는 내용의 별거 없는 가사가, 권정열의 목소리와 윤철종의 기타를 타는 순간 세상 슬픈 가을 노래가 되어버렸으니까.
오늘은 다행히 날이 개고 하늘이 맑다. 눈이 아플 정도로 파란 하늘을 하얀 구름이 덧칠해야 10월의 하늘 아니던가. 이러다 또 스멀스멀 먹구름이 끼고 소나기가 내릴지도 모르니, 해가 있을 때 나가서 일광욕이라도 해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10월의 날씨가 부디 회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https://youtu.be/xV8CCRM29rI?si=JLt6cmgZq6fQ_a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