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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by 양희은)

이 노래를 듣지 않을 도리가 없는 계절

by radioholic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양희은, '가을 아침' 中)


가을을 느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은행잎과 단풍잎의 색이 바뀐다거나,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몸에 걸칠 외투를 꺼낸다거나,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따갑다거나 뭐 이런 것들. 하지만 내가 가을을 감지하는 곳은 바로 우리 집 거실 창가다. 남향임에도 해가 높은 여름에는 햇빛이 창문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해가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거실을 노란 볕으로 채우기 시작하면 비로소 가을이 시작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햇볕으로 가득 찬 거실 구석에 앉아서 라디오를 듣거나 책장을 뒤적이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옆에 있는 화분들과 함께 광합성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일주일 중에 이렇게 자연광을 맞으며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둘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나고 난 뒤의 가을 아침이 주는 마법의 시간이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다.


나의 가을은 우리 집 거실에서 시작된다




양희은이 부르고 아이유가 다시 부른 '가을 아침'을 들으면, 가을이란 시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겨주었는지를 새삼 느낀다.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소소하게 행복한 시간, 그 공기 속에서 당연하게 일어났던 일상의 기억만으로도 흐뭇해지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 말고 또 있을까. 여름엔 물놀이를 해야 하고 겨울엔 눈사람을 만들어야 제대로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가을은 그저 그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은 계절이다.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아빠는 약수터에서 정체 모를 물을 떠 오시는,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게 학교에 가고 오빠는 한가하게 기타 치는... 정말 별거 아닌 어느 날 가을 아침의 풍경이 우리를 눈물짓게 하고 한없이 감상에 빠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음을 우린 이 노래를 들으며 깨닫게 된다. 정말 소중하고 좋은 시간을 우린 오늘도 이렇게 쉽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아이유가 노래하는 가을 아침이 싱그럽다면, 양희은이 부르는 가을 아침은 애틋하다. 같은 가사의 같은 노래임에도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정서에 따라 노래는 이렇게 바뀐다. 난 그 두 분위기 모두가 좋아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두 사람의 노래를 선택해서 듣는다. 원곡을 부른 목소리의 깊이에 감탄하면서, 그리고 그 노래를 다시 불러서 젊은 사람들에게 퍼뜨려준 아이유의 목소리에 고마워하면서.


와이프와의 연애 시절, 우리가 자주 갔던 LP펍에서 내가 신청한 이 노래가 울려 퍼졌을 때 '와~'하며 탄성을 지르고 함께 노래 부르던 우리와 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그 흥겹고 따뜻했던 표정들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그때 입을 모아 노래하고 서로 웃으며 건배했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가을을 보내고 있으신지. 그 때로부터 약 15년이 훌쩍 넘게 지난 이 가을 아침에도 이런 좋은 노래들을 들으며 부디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계시길.


https://youtu.be/8Yl_YHYy3iE

양희은...


https://youtu.be/ZDoH5dQ58ps

그리고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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