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살던 본가의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는 봄이면 뭐라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벚꽃길이 있다. 그저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몇백 미터 남짓의 2차선 도로지만, 그 아파트가 생길 때부터 함께 했던 그 몇십 년의 세월 동안 자라난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장관 때문에 다른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올 정도의 정취를 자랑한다. 물론 그 벚꽃길을 조용히 즐기던 동네 주민들에겐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지만. 봄이 지나면 벚꽃도 지고 벚나무의 인기도 시들해지지만, 난 그 나무들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전람회의 '마중가던 길'을 들으며 그 길을 걸으며 외출을 나가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마중가던 길'은 내겐 가을이면 반드시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 노래다. 오직 기타 반주 하나에 얹어진 서동욱의 살짝 떨리는 미성은 오히려 너무 닳고 닳은 느낌이 없어서 질리질 않았다. 하늘이 새파란 가을날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하염없이 길을 걸으면 가을을 온전히 누리는 기분이었다. '마중가던 길'이라는 과거 시점의 제목은 담백해서 더 서글펐던 것 같다. '난 이제 잊혀지겠지...'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서동욱의 목소리까지, 이 노래는 담담해서 더 슬픈 그런 노래였다.
이제 더 이상 서동욱의 목소리를 노래를 통해 들을 수 없지만, 그래서 이 노래는 더 소중하다. 이젠 다른 분야에서 멋진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한 때 가장 감수성이 넘쳤던 젊은 시절에 남긴 흔적 같은 곡이기 때문일까. 모든 게 혼란스럽고 엉망인 것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 뭘 안다고 CD에서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듣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더 그렇다. 그래서... '마중가던 길'은 내겐 가장 멋진 가을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