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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Jun 17. 2024

우영우 효과는 없었습니다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의 고등학교 직업특강 후기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우영우.”


얼마 전 최고 히트작이었던 법정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당시 이 드라마의 인기는 엄청나서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연이어 방영되었고,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 우영우가 한창 방영 중이던 어느 날, 한 고등학교로부터 ‘직업특강’을 요청받았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20여 명의 다양한 직업군 종사자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소개하고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강의 형식의 진로 진학 상담이었다.


선생님이나 심의위원,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자주 있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분위기는 어떨지, 아이들의 반응은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긍정적인 쪽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정말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다. 


중학교 때부터 법조인을 꿈꾸었고 고등학교 때도 법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법조인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을 매체에서 보여주는 막연한 이미지로만 알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되고 나서의 일상 모두 학생인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변호사를 꿈꾸는 학생이 직접 변호사를 만난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또 하나 믿는 구석은 바로 ‘우영우’였다. 드라마의 인기만큼 변호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고 싶은 아이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기대하며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고 학교로 향했다.


예상이 빗나간 것은 학교에 도착한 직후부터였다. 20여 명의 강사별로 강의할 교실과 수강생 수가 기재된 표를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변호사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분명 정원을 꽉 채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고, 다른 직업의 강사님들과 비교하면 평균 정도였다. 


강의실별로 골고루 배정해서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강의실로 입장했는데, 표에서 확인한 것보다 아이들의 숫자가 더 적었다. 아직 다 안 왔냐고 물어보니 이게 전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아이들도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준비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교실 한가운데 책상에 앉은 아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옛날에 선생님들도 내가 조는 거 다 보고 계셨겠구나. 20여 년 만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나 해서 아이들에게 다 법대 지망인지, 법조인이 꿈인지 물었다. 놀랍게도 법대에 가고 싶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는 아이는 그나마 제일 비슷한 분야라 신청했다고 했고, 나머지는 그래픽 디자이너, 공인중개사 등등 법조인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희망하지만 이번에 초청된 강사님 중에는 없어서 남는 것을 골랐다고 했다.


나는 놀랐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아이들이 희망하는 직업은 의사, 변호사, 교사, 디자이너 정도로 다들 비슷했고, 누구나 다 알만한 직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20여 개 분야의 직업강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대부분 원하는 분야의 직업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법조인을 꿈꾸는 아이들도 제법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 다양한 직업이 있고, 아이들이 원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남들이 다 원하는 직업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우영우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서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변호사도 결국은 엄마 아빠, 어른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의 대표주자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그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면 좋겠다. 막연한 동경으로 법대에 진학하고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방황도 많이 했던 나에게, 이 직업특강은 조금은 아쉬움으로, 그리고 더 많게는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하는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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