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의 두 번째 직업특강 이야기
첫 번째 직업특강이 끝난 뒤, 두 번째 직업특강 요청을 받았다.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시간.
첫 강의 때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를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당장은 변호사를 꿈꾸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도움을 주려면 듣게 해야 하고, 듣게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
나는 아이들 모두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고민했다.
두 번째 특강 하는 날, 교실에는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낯선 나를 바라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후, 나는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첫 장래희망이 뭐였는지 기억나세요? 저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친구들을 따라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던 8살의 나.
그로부터 12살 무렵까지 줄곧 피아니스트를 꿈꿨었다.
하지만 작은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 외에는 특별히 재능도 흥미도 없었고, 몇 년간 다닌 학원을 그만둘 때도 미련이 없었다.
이후에는 종합학원에 다니면서 학교공부를 열심히 했고, 장래희망란에는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 익숙한 ‘선생님’을 적었다.
그러다 아마도 중학생 무렵 방영하던 드라마에서 판사, 변호사인 여주인공을 본 후, 그저 '멋있기 때문에' 되고 싶어 졌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장래희망란에 법조인을 적어 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나의 장래희망 변천사와 그 이유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개인적이지만 그 자리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겪어왔을 시간들, 별것 아닌 이유로 써내던 장래희망에 관한 이야기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를 것 없는 경험을 한 나에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법조인을 꿈꾸며 법대에 진학한 이후의 이야기도 했다. ‘법’이기에 항상 옳은 답이 정해져 있어 공부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것, 방대하고 어려운 공부에 늘 좌절했다는 것, 다른 분야로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법조인이 된 현재 모습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까지.
선택이 항상 최선일 수는 없고,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나름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전해주고 싶었다.
진로 선택을 고민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른 친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공학을 전공하고 파티시에가 된 친구, 건축학을 전공하고 직업군인이 되었다가 전역하고 회사에 다니는 친구, 미술을 전공하고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작가가 된 친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장 어느 대학을 가고 어느 과를 가는지가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큰 선택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결코 삶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친구들도 고등학생이던 시절 성적과 대학 진학을 고민하고 마음 졸였던 시간을 겪었기에, 당장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좌절할 필요 없다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조는 아이도, 지루해하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뒤편에 숨어 졸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다. 학폭 변호사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학폭 썰 하나만 풀어주세요’라며 장난스럽게 질문하는 아이도 있었다. 한참 어린 후배들이었지만, 강의를 하는 2시간만큼은 서로 이어져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의 힘찬 박수와 함께 강의를 마치면서, 이 아이들이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장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