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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늘의 일기.

워낙 입이 짧은 데다가 사춘기에 11학년 스트레스가 겹친 작은 아들은 ‘밥을  먹는재주로 엄마를 힘들게 한다.

도시락도 과일이나 좀 싸 달라 하고  학교 다녀오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제 방으로 올라간다.

빼짝 마르고 길쭉한 아이가 휘적휘적 계단을 오르면 엄마는 뭐라도 먹이고 싶어 혼자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시간을 두고 이것저것 먹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시간차 공격에 네가 그렇게 안 먹으니 엄마가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 호소 공격, 그렇게 안 먹으면 기운 빠져 쓰러진다는 협박까지....

혼자 슬펐다 혼자 화가 났다 그렇게 애가 탄다.


며칠 전,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고 두심 대사를 듣고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하여튼 지 밥 처먹어 주는 것도 유세지. 유세여.

지 어미는 그냥 밥 먹었냐 묻는 게 일이고.

자식새낀 툭하면 나 밥 안 먹어.

아이고 이 지랄하는 게 유세지.

아이고 더러버. “.


똑 내 맘 같은 대사에 그동안 속상함이 터져 버렸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드라마에 두 주인공 사랑 얘기는 눈에도 안 들어오고 이렇게 부모 자식 사연들만 보인다.


스무 살이 넘는 큰 아들놈을, 열여섯에 키가 문틀에 닿을 만큼 큰 작은 아들놈을 키워대면서도 나는 늘 초보 엄마 같다.

 서투르고  애면 글면 애가 탄다..


오죽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으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한국이었으면 병원 끌고 가 ‘링거라도 한방 놔주세요’ 할 건데 여기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목줄에 매인 어미개처럼 늘 낑낑댄다.

.

그러고는 시끼가... 엄마가 먹으라 하면 먹어야지.... 아무도 못 듣게 툴툴댄다.


한동안 큰 아들놈이 말을 너무 막(?) 해대서 속상해했었다.

그래서 아들놈을 붙잡고 “엄마한테 말 좋게 해야지. 네가 엄마를 리스펙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했더니 꼭 필요 없는 타임에 말을 너무도 잘하는 큰 놈이 그랬다.

“내가 힘들 때 엄마한테 퉁퉁거리고 징징대도 엄마는 그걸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엄마에 대한 내 리스펙이야”


남의 나라 살이가 늘 팍팍하고 힘들다 불평하지만 애들 만큼일까.

경쟁하고 평가받고 부딪치며 살아가는 아이들에 비해 나는 편하게 이곳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학교 앞에 살면서도 학교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 (그러면 잠을 오분이라도 더 자고 밥을 한 수저라도 더 먹게 되니)


차분히 내리는 비가 너무 좋다.


오늘은 학교 갔다 온 아들놈이 뭘 좀 잘 먹어줬음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11학년의 반을, 12학년 1년 동안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암울했던 2년.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

그리고 멀리 있는 아이에게 나는 여전히 밥은 먹었냐 묻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아들놈이 뭘 좀 잘 먹으며 지내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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