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빙하투어

엘 칼라파데에서 눈물 쏙 뺀 이야기

by 박희

N에게


안녕 N.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남쪽 파타고니아 지방에 있는 엘 칼라파데라는 곳이야. 엘 찰텐에 있다 이곳으로 온지 오늘로 삼일째다. 엘찰텐에 있다 오니 이곳은 제법 사람 사는 곳인 것 같아. 엘 찰텐 마을은 그야 말로 피츠로이 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등산을 위한 마을 같았거든. 그래도 깨끗한 공기와 피츠로이를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을 곳이 되었어.


이곳 엘 칼라파데는 며칠 째 날씨가 흐리다. 오늘은 아침부터 약한 비마저 내려 스산하기까지 해. 호스텔 침대에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 일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 혼자 하는 여행에 이런 날씨는 정말 독약 같아. 사람을 시들시들하게 하고 한없이 우울하게 만드니까. 그래도 힘을 조금 내 보려고 몸을 움직여보기로 했어.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냄비에다 넣고 끓인 다음에 계란을 풀어 계란국밥을 만들었어. 김치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마도 그건 욕심일테지.


아침부터 서두는 이유는 오늘 모레노 빙하투어를 가기 때문이야. 이런 날씨에 웬 빙하투어냐고. 이곳 날씨는 정말 변덕쟁이 같아서 특별한 악천후가 아니면 날씨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니까 투어는 계속 진행이 돼. 이곳에 온지 삼일이 지났는데 날씨탓만 하고 별로 한 게 없어 거금을 주고 모레노 빙하 투어를 예약했더랬어. 호불호가 좀 있긴 한데 그래도 뭐 여기까지 와서 그냥 패스하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렴한 호스텔 숙박에 슈퍼마켓에 서 산 재료들로 끼니를 때우지 않았다면 물가 비싼 엘 칼라파데를 견디디 못했을 거야.


혹시 빙하를 본 적이 있니? 난 말이야. 막상 눈 앞에 거대한 빙하를 보니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어. 뭐랄까 포토샵 된 사진 같은 걸 보고 있는 느낌 말이야.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한없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또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어. 엘 찰텐에서 본 피츠로이도 이곳 모레노 빙하도 말이야.


우르르 쾅쾅. 빙하가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투어는 계속 됐어. 배를 타고 빙하 가까이 가서 본젹적인 빙하 탐험을 시작하는 거지. 우선 시작 포인트에 도착하면 아이젠을 신어야해. 겨울 산을 등산한 적이 없어서 아이젠을 딱히 신을 일이 없었잖아. 일단 발이 너무 불편하고 똑 바로 걷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어쩌겠어 일단 시작은 했고 혼자 돌아갈수는 없는 노릇이니 끝까지 고고하는 수밖에. 투어 가이드를 따라 한발 한발 빙하 위를 내딛을 때마다 곡소리가 나오더라. 춥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발은 아프고. 이걸 할려고 그 비싼 돈을 지불했단 말이던가를 외치며 말이지. 물론 마음속으로만.


시작은 다 힘든 법이니까. 그래도 묵묵히 앞만 보고 가이드를 따라 가다보니 정말 꿈같은 풍경이 펼쳐지더라. 멀리서 본 모레노 빙하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 빙하가 녹은 아이스 뽕따 소다 맛 같은 빛깔의 물이 내 발밑에서 흐르는데 참 독특한 경험이었어. 마지막 코스까지 가면 고생의 보상으로 가이드가 빙하를 깬 얼음을 탄 위스키를 한잔씩 주는데 그 맛이 참! 진즉에 줬다면 술김에 빙하 위를 잘 걸었을텐데 말이야. 이곳에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었어. 그 순간은 내 자신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상했겠지만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침대 위에 뻗어버렸어. 씻지도 않고 말이야. 희안하게 꿈속에서도 빙하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뭐가 좋은지 헤헤 웃으며 위스키 한잔을 손에 들고. 엘 칼라파데에서 나는 좀 많이 외로웠고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거 같아. 그리고 꿈 속에서 결심했지. 다음에 파타고니아에 다시 온다면 꼭 누군가와 함께 오겠노라고 말이야. 그게 너라면 더 좋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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