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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Jun 10. 2023

착한 빌런 콤플렉스

주말을 바친 <열여덟의 순간>  

지난 주말 딸을 꼬드겨서 2019년 JTBC에서 방영했다는 <열여덟의 순간>을 정주행했다. 처음엔 딸애가 "엄마, 이런 것도 있어" 하여 보기 시작했는데 2회인가 3회부터는 내가 더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낼 모레면 할머니가 될 나이인데도 나는 아이들 드라마가 좋다. 16회 동안 함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러면 안돼"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봐" "너가 잘못한 거 아냐" 뭐 이런 추임새를 넣는 것도 좋고, 안내원 복장 같은 교복에 머리에 빵떡모자를 쓰고 다녔던, 기억할 거 하나 없는 내 학창시절에 대한 위안을 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렷다.

드라마 관전평. pre-청춘 드라마라는 소개글이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청춘이 있나 말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본질보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내 눈에는 '공감이 가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드라마였다(보는 내내 자꾸 넷플에서 본 '루머의 루머'와 자동비교되었음). 작가도 연출가도 여전히 청소년은 죄다 학생이고, 그들에겐 오로지 공부와 이성 간의 작은 설렘, 그리고 우정밖에 없는 것처럼 그린다. 부모와 교사의 입장은 모 아니면 도. 부유한 집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목을 매고(정확하게는 서울대 진학), 없는 집 부모들은 성적에 애면글면하지 않는다. 이것도 변함 없는 클리셰.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점인데, 그것도 뭐, 예전에 다 하던 것이다(돈을 못 받아서 그렇지 예전 학생들은 집안일을 엄청 하지 않았나).

실패한 <스카이캐슬> 같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정주행을 완성한 이유는 대놓고 빌런으로 나오는 휘영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이 '진짜 정직한 현실 악당, 자기가 하는 짓을 (진심으로) 모르는 그런 악당'이 되어주길 바랐는데, 녀석은 딱 등장하는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 나쁜 짓을 할 거예요'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연기로만 따지면 휘영이가 젤 잘함(마지막에 무릎 꿇은 것만 빼면)이었지만 풍비박산 난 집안에 정신병원에 들어간 형님, 주유소 알바 따위는 사족. 이 녀석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고 성장하여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궁금증을 안겨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라서 평가 불가. 하지만 딸과 함께 짜파게티 먹으며, 오붓하게 주말을 보내게 해주었으니 별은 2개.

추신. 그나마 현실적인 어른은 남주 엄마, 향기 양은 이제 틀을 벗을 때가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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