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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Jun 11. 2023

달리면 깨닫게 될까, '나'란 존재를

이상한 나라의 할머니_내 맘대로 책 읽기


여행은 힘들고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너의 눈길이 가는 곳에 항상 너의 마음을 머물게 하라._라라무리 격언  


연남동에 가면 '무어'라는 헤어숍이 있다. 의상학을 전공한 마라토너 쥔장이 예약제로 운영하는 개성 넘치는 곳이다. 개성 넘친다고 단언한 이유는 당연히 쥔장 때문이다. 헤어디자이너, 마라토너, 독서모임 리더. 이 세 가지가 그를 대변해주는 워딩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개성은 따로 있다. 그와 친해진 사람들만 아는 것. 그리고 또 하나를 들자면 그가 "이따금 술꾼"이라는 것. 정말 이따금이다.)  


나는 이 숍을 (장가 들기 전의) 아들에게서 소개받고 나서 단골이 되었다. 숏컷을 선호하며 늘어나는 백발을 갖은 색으로 물들이길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쥔장 무어가 너무나도 잘 헤아려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그곳에서 진보라, 청보라, 자홍, 마젠타100에 가까운 핑크 등 다양한 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다. 헤어컷 솜씨 또한 예술인 데다 얼마나 정성껏 이발을 하는지 컷 하는 데만 거의 1시간 이상을 쓸 정도다. 덕분에 나는, 마우스를 한참 롤링다운 해야 나오는 나이에, 무려 투 블럭 숏컷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머리를 하러 갔다가 무어에게서 "라라무리"라는 신비스러운 종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로라하는 울트라마라토너들을 경악하게 만든 'Born to Runner"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멕시코 치와와주의 험한 협곡에 은둔한 채 살아가는 타라우마라족인데, 종족의 진짜 이름이 '라라무리'로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무어는 라라무리의 한 소녀가 달리는 여정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를 권해주었다. 

경계성 당뇨 진단을 받은 후 걷기와 달리기에 차츰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정말이지 귀가 '솔깃'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인 세상 최고의 험한 울트라 마라톤 코스를 치마를 입고, 맨발에 전통가죽샌들 하나 달랑 걸치고 뛰는 소녀 이야기. 맙소사, 그게 가능하다고? 


나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검색창을 열었다. 두 눈으로 라라무리의 존재를 확인했고, 연결 검색 끝에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만났다. 그 책이 바로 <<본 투 런: 인류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질주>>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이후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인간의 두 발 움직임'에 대한 책이다. 깊은 계곡에 사는 탓에 가축을 치거나 농사를 지을 때면 몇 십 킬로미터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부족, 그야말로 '달리기 위해 태어난' 부족, 혹은 '가장 잘 달리도록 진화한' 부족, 라라무리의 이야기. 세상 사람들은 라라무리를 일컬어 "지구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평온하며, 무엇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주자"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묘미는 라라무리라는 신비한 종족 너머 "왜 달릴까?" "나도 달릴 수 있을까?" "내가 달리게 된다면 나는 어떤 달리기를 할까?'란 물음과 맞닿는 지점에 있다. 아마도 나는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달릴 것이다. 일에 치어 사느라 무너진 나, 일 핑계로 무거원진 몸, 스트레스를 들먹이며 입에 단 것만 찾았던 못된 습관, 힘들어 힘들어...아무것도 하기 싫어, 라는 말을 입에 단 채 갈수록 우둔해지기... 이것들의 총합이 지금의 나다. 그런 게으른 내가 조금씩 걷기 시작하며 발로 땅을 디딜 때의 '느낌'에 집중하게 되었다면, 이제 조금 부지런해질 몇 달 뒤의 나는 '조금 빠른' 두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겠지? 뒤뚱거리며 자전거를 배우다가 어느 날 두 발로 쌩 나갈 때 느꼈던 그 신나는 느낌, 공기와 바람의 맛을 느낄 수 있겠지, 바퀴의 힘이 아니라 내 두 발의 힘으로! 그리고 그때부터의 달리기는 건강을 위해라기보단 달리는 맛 때문에 달리는 것이 되겠지. 암. "한 이십 년 더 참고 뛰면 고통에서 아주 해방됩니다."라는 조언(?)을 진심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이제 진짜 달릴 때가 되었나 보다.  


인상 깊은 구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예술이 불꽃을 잃으면 지적 동종교배로 인해 쇠약해지고, 최초의 원칙이 진부한 전통이 되고 나면 급진적인 세력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폐허 위에 새로운 예술을 세운다. 젊은 울트라러너들은 1920년대의 '잃어버린 세대' 작가나 1950년대의 비트 시인, 1960년ㄷ의 록 음악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가난하고 무시당했지만 모든 기대와 금기에서 자유로웠다. 그들은 인내심이라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예술가 들이었다."


본투런_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 민영진 옮김 | 여름언덕 | 2016 (원제 : Born to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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