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만들어 둔 김치찌개에 불을 올려 남편의 아침 식사를 차렸다. 나는 아침밥을 먹지 않지만 끓어오르는 붉은 국물과 흰쌀밥을 보니 식욕이 동했다. 식구들이 빠져나간 뒤 식탁에 앉아 내 밥을 펐다. 손수 끓인 국물 맛에 흠칫 놀랐다. '어머님의 어깨너머로 배운 비법'이라고는 전혀 없이, 요리책과 인터넷의 레시피를 참고해 못 먹을 음식에서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게 집 밥의 맛인가. 심심한데 감칠맛 있어 멈추지 못하고 두 세 그릇을 비웠다. 돼지고기에 비계가 많았지만 오늘처럼 영하 10도로 기온이 떨어질 땐 몸에 비계가 필요할 거라며 다 먹었다.
국물을 만들 때 내가 쓰는 방법은 그저 재료를 많이 넣는 것이다. 멸치, 붉은 새우, 다시마를 넣은 다시 봉지를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해 둔다. 냄비의 물이 끓으면 그 봉지를 한 두 개 넣고, 요리하고 남은 표고버섯 기둥과 얼려둔 통마늘, 파도 넣는다. 불을 끄고 20분쯤 둔다. 담백한 멸치 국물을 내려면 섭씨 85도 물에 재료를 넣고 그것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건져내라는데* 온도를 잴 여유는 없으니 적당히 끓여 낸다. 간은 맛소금, 천일염, 멸치액젓으로 하고 새우젓을 넣을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조미료를 섞어 간을 하면 오묘하고 깊은 맛이 난다. 조미료 양은 국물 빛깔과 국 종류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여기에 양파, 무를 넣으면 맛이 더 풍부해지는데 써본 중 최고는 파뿌리다. 파뿌리가 들어간 국물은 '시골 맛'이 난다. 기분 좋은 칼칼함이 느껴져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콩나물 국 같은 데 넣으면 좋다. 청양고추는 남용하면 안 되지만 한 두 조각 넣으면 부족한 맛을 감출 수 있다. 맛집의 비밀을 공개하는 티브이 프로를 볼 때면 사장님들이 사용하는 기발한 밑재료에 놀라곤 했다. 그런 것까지 따라 하긴 어려워도 품질 좋고 다양한 재료를 쓸수록 음식 맛이 좋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맛있는 음식은 행복이다. 나에게는 이 김치찌개 정도가 적당하다. 가위로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돼지고기 한 근과 볶아 밑국물에 내내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음식. 다른 반찬 없이 계란 프라이나 김 정도만 있으면 한 끼 해결되는 단출한 밥상. 음식 솜씨가 너무 좋은 주부는 고달파진다.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라는 말은 물론 기쁘지만 '앞으로도 늘 맛있는 걸 준비해 주길 기대할게' 같아 부담스럽다. '네가 잘 해먹이지 않아 식구들이 아픈 거 아니니?'라는 말에는 할 말을 잃기도 한다. 잘 차려낸 식탁이 인생의 미션은 아니기에 적당히 밥을 차린다. 그래도 늘 고민이다. 내일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