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 14세가 된 아들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이가 총을 사 달라 할 때마다 나는 ‘사용 연령 14세 이상’을 들먹이며 거절해 왔다. 하지만 이제 용돈을 모아 ‘하비샵’에 가서 학생증을 내밀면 그 애는 총을 살 수 있다. 그래, 장난감 총이 대수냐. 보안경 착용하고 사람 향해 안 쏘면 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아이의 사춘기였다.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인 엄마들. 하루에 분유 몇 cc 먹고 똥은 몇 번 싸는지 기록하던 때가 그제 같고 초등학교 가서 잘 적응할지 조마조마 지켜보던 게 어제 같다. 초등 고학년 정도 되니 우리 아이가 이제 다 컸구나 싶어 맘을 놓았다. 그런데 중고생을 키우는 이웃 엄마들의 낯빛이 밝지 않았다. 선배 엄마들은 하소연과 조언을 겸해 후배 엄마들에게 사춘기 아이가 벌이는 사건을 털어놨고 나는 호기심과 마음의 준비를 겸해 열심히 귀동냥을 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한지 꽤 됐지만 나는 그 말을 꺼렸다. 2차 성징과 전두엽 발달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를 ‘병’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중2 무서워서 공산당이 못 쳐들어온대” 라는 말에 따라 웃긴 했지만 그 나이 아이들을 희화화하는 듯 들려 민망했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은 ‘병’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짙은 화장을 하는 것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솜털 보송하던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니기 시작한다고, 부모 몰래 핸드폰 공기계를 사는 것은 애교고 성인 용품을 다른 집 주소로 배송시켜 받는다고 했다. 친구 커플에게 빈 집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극적인 사춘기를 겪는 건 아니겠지만 갖가지 사연이 놀라웠다.
선배 엄마들은 덧붙였다. “핸드폰은 공신폰을 쓰게 하거나 ‘모바일 펜스’를 깔아서 감시 모드로 해 놔. 무료 앱은 소용없어. 문을 잠그지 못하도록 사춘기 전에 문 손잡이를 빼놔. 문을 아예 떼 버린 집도 있대. 그리고 절대로 집 비우지 마. 빈 집에서 애들이 뭘 할지 모르거든. 이성 친구 사귀지 말라고, 사귀다 걸리면 그 날로 전학시킨다고 해. 우리 동네 비밀 없잖아. 혹시 우리 애 누구랑 손잡고 다니는 거 보면 모른 척하지 말고 꼭 나 알려줘야 해. 중3 되면 다들 정신 차리고 돌아온대. 중2만 잘 보내면 돼.”
이제 나도 말 많고 탈 많은 중2 엄마다. 조언에 힘입어 현명한 사춘기 부모로 거듭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 감시 앱을 깔 수 없었고 문 잠금장치를 빼놓지도 못했다. 그건 성장을 가로막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이는 또래와 어울리며 비밀을 나누고 상처를 주고받을 것이다. 잘난 친구를 보며 열등감에 빠질지도, 여중생의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 밤새 설렐지도 모른다. 몸의 변화에 당황하거나 젊은 혈기에 주먹질을 할 수도 있다. 닫힌 아이 방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엄마가 주었던 관심과 애정을 아이가 기억해 주길 바랄 뿐.
개학을 앞둔 2월 말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었다. 빨간색 히비스커스만 보고 자란 주인공 캄빌리는 고모 집에 갔다가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본다. 캄빌리의 오빠는 고모로부터 보라색 히비스커스 줄기를 얻어 와 집 앞마당에 심는다. 그리고 그 줄기가 시들시들한 봉오리를 터뜨려 꽃을 피울 때쯤 남매와 어머니는 가부장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나이지리아 소녀의 성장소설이었다.
아이와 대화가 통하기 시작한 지난 몇 년간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역사와 미래, 이상과 현실 같은 걸 두루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모은 꽃으로만 가득한 내 세상은 붉은 히비스커스로만 채워져 있었을 터. 그러니 당분간 아들의 방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 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찾을 테니까. 아주 나쁜 짓 빼고는 다 해도 되니 자유로이 다니며 도처에 널려 있는 색색의 꽃들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곧 성인용 총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