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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움 Mar 14. 2022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

왜 본명을 쓰지 않는가?

작가 활동을 하는데 나는 '비움'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책을 쓰든, 미술계 활동을 하든, 시를 쓰든, 비움은 모든 공식적인 활동에 쓰는 나의 이름이다.

이름 콤플렉스가 있어서 필명을 쓰는 건 아니다. 

필명을 쓰는 이유는 나의 이름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개풀처럼 흔하디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본명은 '은경'이다. 이 이름이 어찌나 많은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반에 나를 비롯해 꼭 다른 한 명이 있을 정도였다. 교회에 가도 두 세명이 있고 병원에 가도 동명 이인이 수두룩하게 차트에 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는 글작가 중에는 나와 성까지 같은 에세이 작가가 있고, 성만 다를 뿐 같은 이름의 작가가 몇 명 있다는 것도 안다. 화가 중에 나와 똑같은 이름의 작가가 여럿 있으며 실제로 교류하는 화가 중에도 동명이인이 있다. 

이러니 은경이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나라 여자들 중 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다른 흔한 이름들도 많이 있겠지만 유독 이 이름이 많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바로 '은경이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70~80년대에 이 이름은 비교적 예쁜 이름이었다. 세련된 이름은 아니지만 부르기 좋고 어감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부모들이 딸 이름을 '은경'이라고 많이 지었나 보다. 하긴 우리 딸 친구 중에도 '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고 하니 그리 밉지 않은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어서 작가로 데뷔할 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많은 '은경이' 라는 작가 중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로 기억할 수 있을까? 독자들도 헷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당시에 미니멀리즘,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있었고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을 쓰려고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움'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냈다. 


'비움'은 나를 정의하기에 찰떡처럼 잘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도 비우고, 쓸데없는 생각도 비우고, 정신도 가볍고 맑게 살고 싶은, 나의 삶의 모토와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몇몇의 친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너무 좋다, 나의 이미지와 딱 어울린다'라고 이구동성 말했다.

이렇게 하여 나의 공식적 이름은 '비움'이 되었다.



이 이름을 사랑한다. 친한 이들은 '비움'이라는 이름보다 '은경 씨, ' '은경아' 하고 지금도 부르지만 나는 '비움'이란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더 반갑고 기분이 좋다. 

'비움'에는 '비운다'는 의미가 있어서 '가볍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움'이라는 어감은 결코 가볍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흡족하다.

필명이지만 짧고 간단해서 좋다. 

사람들은 '비움' 하면 미니멀리스트인 나를 생각할 것이기에 이름과 추구하는 바가 매치되어 행복하다. 

'비움'이라고 불렀을 때 촌스럽지 않고 어감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만족하는 이름, 나를 대변하는 이름이며 곧 나 자신인 '비움'은 오랜 기간 불려진 '은경'이라는 이름처럼 앞으로 나와 영원히 함께 갈 이름이다. 어쩌면 '은경'이라는 이름보다 더 많이 불려질 수도 있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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