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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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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움 Jan 27. 2022

결국 '사람'이다

"장판이 저렇게 울어서 새로 깔려고 하는 거예요."

"건물 신축시 겨울에 장판을 깔게 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보일러를 돌리면 장판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이런 건 장판 깔면서 다 잡아드리니 새 장판을 위에 깔아도 괜찮습니다."

이틀 전, 첫 번째로 장판 견적을 보러 온 사람의 대답이었다. 


"음, 저거는 바닥에 수증기나 공기가 빠지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가장자리 마감 부분을 칼로 잘라주고 걷어 공기를 빼준후 다시 깔아주면 자연스럽게 펴집니다. 다행히 바닥에 결로는 없으니 수증기가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완벽하게 펴지지는 않아도 며칠 지나면 깨끗이 펴집니다."


어제 두 번째로 견적을 보러 왔던 사람의 말이다. 이 사람은 처음의 사람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우세해 보였고 정직해 보였으며 당장 자신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지식이나 방법을 가르쳐주면 일거리가 줄어들게 뻔하고, 당장 일을 잡지 못할 건데도 친절하게 원인을 알려주고 해결방법까지 제시해주었다. 심지어 장판의 중간 이음새 부분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자신들만 쓰는 전용 본드를 세 병이나 주고 갔다.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장판이 우는 곳 주변의 마감 부분을 칼로 조심스레 잘라주고 공기를 뺀 후 다시 얌전하게 덮어 주었다. 오래 울어서 장판이 쉽게 펴지지 않는 곳은 아래에 신문을 받쳐서 펴지도록 잡아주었다. 가볍게 우는 데는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펴지는 게 눈에 보였고, 조금 더 우는 부분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당히 많이 잡혔다. 나중에 장판이 다 펴지면 칼을 댄 가장자리 마감은 실리콘만 쏴주면 된다 하였다. 


어찌나 고마운지 나는 그에게 명함을 한 장 달라하였다. 물론 전화번호는 견적 신청을 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중에 이사하여 도배장판을 하게 되면 꼭 연락을 드리겠다 했다. 그에게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위 지인들에게도 적극 소개해 줄 생각이다. 또 장판이 펴지더라도 5년이나 써서 얼룩이 진 곳들이 있으니 정말로 새로 깔게 될지도 모른다. 새것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다시 깔자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면 나는 이 사람을 진짜로 부를 것이다. 


장판이 우는 원인과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는 얼마든지 일을 따서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장 수입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 고객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기꺼이 알려주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일 텐데도 아낌없이 주었다. 고객에게 굳이 그런 건 알게 해 줄 의무가 없지 않겠는가! 견적을 내고 일을 따서 돈을 받고 장판을 깔아주면 끝나는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정직하고 신뢰할만한 행동이 존경스러울만큼 훌륭하다고 느꼈다. 이후 나중에 어디로 이사하든지 이 사람을 부를 것이며, 또 주변의 누가 도배장판을 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믿고 하라고 말할 것이다.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신뢰를 보여준 그에게 무얼 줄 수 없으며 맡길 수 없겠는가? 



만약 그가 우리에게서 일을 맡고 장판을 깔아주고 갔으면 그일 한 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는 한 번의 일을 따내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았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따낸 것이다. 오래 사람들(고객들)을 상대하며 일을 해온 경험 때문인지, 원래 그의 성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의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것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준 게 확실했다. 그런 태도를 나는 충분히 보고 읽었다. '어떻게 해서든 일을 따내고 봐야지' 하는 욕심보다 고객에게 이익을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의 인터넷 이용후기를 보고 딸아이가 "엄마, 후기가 많아! 이곳이 일을 더 잘하나 봐" 하고 견적 보기 전 얘기를 했었다. 하나 나는 댓글이나 후기 같은 걸로 판단을 하지는 않는지라 무조건 신뢰하지는 않았다. 공평하게 견적을 두 곳에서 보았다. 먼저 온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15년이나 이 일을 해 왔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15년씩이나 했으면 얼마나 잘하겠어, 후기나 댓글이 모든 걸 증명하지는 않아, 그런 건 조작도 가능하니 말이야.'라고.

어쨌든 두 번째 사람에게는 나처럼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었나 보다. 나도 장판을 깐 건 아니지만 후기를 써주고 싶은 심정이니까.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고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날이었다. 그가 신뢰를 보여주었기에 나는 그를 얻었고, 그는 나와 내 주변인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사를 하든, 집을 짓든 잊지 않고 그 사람에게 돈의 액수를 떠나서 일을 맡길 것이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소문을 내줄 것이니, 그는 광고비를 많이 들이지 않고도 일을 쉽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일을 맡겨본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같이 하지 않을까? 

그는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것, 마음을 사는 방법을 아니 말이다. 복리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당장 손에 떨어지는 건 없지만 머지않아 배의 배가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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