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살아라
외출을 준비하는 아이, 바쁘게 거울 앞을 오락가락한다. 다미는 24살 예쁜 나이이다. 약속이 있거나 없거나 어디를 나가려면 옷부터 시작하여 신발, 머리, 화장, 가방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을 한다. 집 앞 카페를 갈 때도 바지는 뭐가 좋은지, 신발은 잘 어울리는지 묻곤 한다. 나는 웬만하면 다 예쁘다고 말한다. 거울 앞에서 한참 패션쇼를 하는 걸 보면 "어디 가는데?"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요 앞 스터디 카페" 한다. 공부하러 간단다. 그것도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옷에 신경을 쓰느냐"라고 하면, "엄마, 신경 써야지~ 딸이 털털거리고 후줄근하게 다니면 되겠어?"라고 한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만 해도 키가 안 크는 것 같아 염려했었다. 한데 조금씩 조금씩 위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훌쩍 커버린 아이,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여 옷과 신발을 계절마다 바꾸어가며 산다. 화장품도 이것저것 갖가지 종류를 사재기한다. 화장기가 없어도 뽀샤시하여 곱다고 칭찬하면, 그래도 화장한 게 훨씬 예쁘다며 눈두덩을 시커멓게 바르고 다닌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보다도 더 일찍 화장을 시작했었다. 스무 살 시절에도 다미처럼 눈 언저리를 팜므파탈처럼 칠하고 다녔으니까. 스물셋 초 어느 날 결혼이라는 걸 불쑥해버렸다. 이후로는 화장에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살았다. 어려서부터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었지만 결혼한 여자가 되니 진한 화장을 할 수가 없었고, 거울 앞에서 옷을 입고 벗으며 매번 패션쇼를 할 여유도 없었다. 다미 나이에 나는 애 엄마였고 살림을 했으며, 워킹맘이었으니까.
24살 다미의 푸른 시절
너무 일찍 결혼한 사람, 통통 튀며 생기 넘치는 이십 대를 어딘가에 상실한 사람, 나는 이십 대를 살며 그 나이대의 여자가 즐기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 등의 모든 것을 아줌마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결혼을 늦게 하든지 안 할 거야, 하는 가당치도 않은 망상은 하지 않지만 안타까움은 있다.
저 사랑스러운 나이에, 무엇을 해도 예쁘고 도드라지는 나이에, 나는 아이를 키우고 생활에 허덕이며 일과 가정과 남편과 시댁과의 사이에서 울고 아프고 갈등하며 살았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는 너희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단다. 원한다면 어느 때 해도 상관은 없다. 하나 엄마가 살아보니 이십 대의 젊은 시절은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더라. 사람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겨우 이십 대의 황금 같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과 주변인들에 얽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십 대에는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해보고 누리고 경험하고 살아라. 부모가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 시절이니 매이는 것 없이 마음껏 날아보아라"라고.
다미를 보면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과 공부와 연애와 즐기고 싶은 일을 걸림 없이 하고 산다. 입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큰 고민 없이 구입하고, 가고 싶은 곳은 친구와 후딱 다녀온다. 해외라도 말이다. 맛보고 싶은 음식도 크게 돈에 구애 없이 먹는다. 때로 배달을 시키면 배달비가 음식의 반값이 나올 때도 있다. 속이 쓰려서 한 소리하면, 엄마 원래 그래~ 하고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한다. 나는 실리적이고 경제적인 것을 따지는 쫌스러운 아줌마의 시선으로 보고, 아이는 호기롭고 가볍고 자유로운 이십 대의 낭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대가 나의 이십 대와는 달라졌다고는 해도 그와는 상관없이 아이의 이십 대가 우뚝 솟은 깃대만큼 멋지다. 자신의 시선으로 거침없이 살아가는 게 질투 없이 부럽다. 아이가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원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 푸른 창공처럼 새파란 이십 대의 젊음이 창창하게 들어찬 시절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