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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토끼 Oct 14. 2023

사랑할 확신

초등학생 때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집어 들었다. 성장 소설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융의 개성화 과정을 담고 있어서 놀라웠다. 찾아보니 헤르만 헤세가 융의 제자에게 심리분석을 받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심리학자라 내용 이해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다 읽고도 머리에 둥둥 남아 있는 문장이 있었다.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사랑하는 에바 부인이 한 말이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사랑은 자신의 내부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게 되는 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끌게 되면 나는 가겠어요. 나는 아무런 선물도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당신에게 획득당하고 싶은 거예요 “     


사랑과 확신. 참 안 어울리는 단어다. 영원을 약속하고도 기대와 다른 상대의 모습에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상대에게 마음을 줘도 되는지 경계하면서 조심히 키워나가는 게 사랑 아닌가? 눈처럼 맑으면서도 동시에 쉽게 더러워지는 이 취약한 마음에서 어떻게 확신이라는 단단함을 가질 수 있을까? 애초에 무엇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인가?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쉽게 상대에게 집중한다. 상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상대가 내 사랑에 화답해 주는지에 의식이 쏠린다. 에바 부인은 그렇게 상대에게 끌려가지 말라고 한다. 내부에서 ‘확신’해서 그 사랑이 끌려오게 하라고 한다. 그 확신을 이해하려면 우선 융의 ‘개성화’를 알아야 한다.



개성화는 자신의 수많은 심층 인격들을 만나는 여정이다.


개성화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 심층적인 인격들이 의식으로 통합되어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아(ego)에서 자기(self)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 속에 있던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 다양한 면들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의 소설 속 인물들은 주인공이 개성화 과정에서 만나게 내면적 상징들이다. 그중에서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아니마를 상징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에 잠재된 여성성을 말한다. 단순한 연애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넘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이상향 같은 존재이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이라는 외부 대상에 투영된 자신 내부의 아니마를 느꼈다. 지혜의 여신, 그 아니마가 속삭인다. 외부의 대상에게 빠져서 그 상대가 자신의 세계에 오기를 애원하지 말라고. 그 대상은 네 안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네 안에서 캐내면그때 진짜 그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내 반쪽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서 그 상대와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랑의 목적으로 삼으면, 그 사랑에는 어떠한 확신도, 성장도 없다. 데미안이 마지막으로 싱클레어게 한 말을 새겨야 한다. 

눈을 감아싱클레어! “

자신이 상대에게 투영한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그 영역을 통합해 나갈 때, 기꺼이 사랑의 경험에 뛰어들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오가는 만남과 이별의 경험 속에서 자신을 만나 볼 결심, 그것이 사랑할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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