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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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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시청자 Oct 23. 2019

태초에 ‘서브남’이 있었다

역대 서브남 계보에 한 획을 그을 ‘백경’

로맨스 드라마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소재가 있었으니, 바로 ‘삼각관계’ 되시겠다.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두 남자, 혹은 한 남자를 두고 대결하는 두 여자를 일컫는다. (물론 로맨스 드라마 주 시청층 성별이 여성이라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두 남자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때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가리켜 ‘서브남’ 혹은 ‘서브녀’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서브남’을 중점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사실 서브남 역할은 단순히 주인공들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게 아니다.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임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두 사람은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사랑에 성공할 것이 자명하다. (한국 드라마, 특히 로맨스 드라마는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서브남은 그 끝이 어떨지 모른다. 정식으로 고백은 한번 해보는지, 계속 순애보처럼 여주만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흑화 할 것인지 등등 마지막 화를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즉 서브남이 매력적인 만큼 드라마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어쩌다 발견한 하루>, 참 기대된다.    



세상엔 정말 많은 서브남들이 존재해왔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속 만화 ‘비밀’을 보면 절로 생각나는 <꽃보다 남자> 속 도화보다 먼저 바이올린을 켜던 ‘지후 선배’가 있었고, <미남이시네요>에서 여주에게 수건을 걸쳐주던 ‘강신우’가 있었으며, <성균관 스캔들>에서 아예 걸오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문재신’도 있었다. 참, <상속자들>에서 여주와 친해지고 싶어 괴롭히던 ‘최영도’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이후 드라마 속 삼각관계와 서브남은 좀 더 발전한다. 쉽게 누가 남자 주인공이고, 서브남인지 예상이 안 가는 드라마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이다. 특히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88>은 각각 ‘쓰레기파’와 ‘칠봉이파’ 또 ‘어남류’와 ‘어남택’으로 팬층이 막상막하였다. 그 후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점점 삼각관계, 서브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옛것 취급을 받았달까. 오히려 주연 커플과 서브 커플로 나누어 처음부터 러브라인을 분명하게 한 뒤, 다른 갈등 요소를 심고 브로맨스나 워맨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트렌드였다.    



그런 드라마는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한때 ‘서브병’을 혹독하게 앓아본 사람으로서 매력적인 서브남의 부재는 어쩐지 아쉬웠다. 그런데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속 백경이다. 사실 만화 속 스토리를 보자면 백경은 다른 서브남들보다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은단오가 먼저 자신을 좋아하고, 무려 10년간 짝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 눈길 한 번 받는 것도 힘든 서브남들의 숙명(?)과 달리, 백경은 항상 단오의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하다. 문제는 그게 단오의 진심이 아니라 작가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백경의 마음이다. 그는 첫 화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단오 (여자 주인공)에게 세상 못되게 굴면서, 눈은 언제나 그녀를 향해 있다. 이것만으로 드라마 좀 보던 시청자들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너 이 녀석, 단오 좋아하는구나. 근데 모르는구나!’라고. (어쩌면 작가가 안 좋아하게 설정해서 그런 걸지도) 또한 자연스럽게 단오를 좋아하는 본인의 감정을 자각하고 난 뒤, 얼마나 후회할지 기대하게끔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백경’에게 눈길이 간 것은 그가 단순히 서브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만화 속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즉 인물들은 만화 작가가 그리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백경이 다른 작품 속 서브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포인트이다. 그는 자아를 찾아도 스테이지 (만화 속 장면)에서는 작가 뜻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아무리 본인이 단오를 향한 마음을 자각할지언정, 그는 설정값 때문에 못된 막말을 하고 다른 여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이 심한 말을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본인 입을 스스로 꿰매고 싶을 수도 있겠다. 더 절망적인 건 실제로 꿰맨다 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비참함은 백경을 응원하는 시청자로 하여금 또 얼마나 그에게 빠져들게 할 것인가. 기대가 안 될 수 없다. 그가 서브남 계보에 한 획을 그을 인물이 되길 바라며 또 수요일 밤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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