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나는 무엇을 할까
최근 인기리에 방송하고 있는 <사랑의 불시착> 8화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크리스마스는 남의 생일일 뿐이라던, 그래서 중요하지 않고, 유난 떠는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까지 표현한 윤세리(손예진)가 리정혁(현빈)을 위해 무려 북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선물을 준비한다. 이런 말과 함께.
사람이 참 한 치 앞을 몰라요.
암튼 인생은 뭘 장담하면 안 돼.
앨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빨간 머리 앤도 다른 듯 비슷한 말을 남겼다. 이 두 대사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 변수가 꽤 멋지고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멋지다고 했나? 그런데 애초에 '생각'이 없으면 어떨까? 그것을 변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단순한 우연일 뿐이다. 문제는 사람은 우연만 맞닥뜨리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계획과 예상이 필요하다.
여기서 취준생은 큰 문제를 직면한다. 바로 그 예상 가능함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입시만 집중하면 되었다. 대학생 땐 졸업 요건에 맞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시험을 보면 됐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며 1년 후의 내가 무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태어난 지 만 23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휴학생 신분이 좋았다. 3학년을 마치고 한 1년 간의 휴학은 엄청난 계획도 없었고, 어디 인턴에 합격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대학생이면서 휴학 한 번 안 하고 졸업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불현듯 한 직감과 학교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섞여 대책 없이 지른 것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듣던 4학년 때보다 오히려 불안하지 않았다. 왜? 당장 할 일은 없어도 일 년 후 나는 복학생이 되어 있을 테니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서 느끼는 안정감이 아니다. 일 년 후 나의 모습이 예상 가능함에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정말로 한 치 앞도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특히 대학 때문에 서울로 상경한, 본가가 지방인 경우에 그 감정은 더욱 심화된다. 서울 자그만 자취방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 술술 나가는 걸 뻔히 아는데, 더 이상 이 대학가에 살 이유가 없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당장 어느 회사에 취직할 줄 알고 옮긴단 말인가! 그렇다고 아예 본가로 내려가기엔 여러모로 취준에 불리한 상황이다.
그나마 내가 발견한 일시적인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지원하는 것이다. 며칠뿐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불안감을 추스를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머릿속으로 회사에 합격했다는 상상을 하면 된다. 상상취직이랄까? 문제는 합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웃픔) 누군가는 김칫국이라고 하겠지만, 서류 발표가 날 때까지 며칠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오늘도 자기소개서를 쓰러 가 보겠다. 전국의 취준생 동무들! 가열차게 해 보자우! (사랑의 불시착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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