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2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시청자 May 10. 2019

당신은 직업에 자부심이 있나요?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자, 그렇다면 자부심에 대해 알아보자. 자부심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 그 가치를 믿고 당당히 여기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자고로 회사란 마음속에 항상 사직서를 품고 있지만 진짜로 때려치울 용기는 없어 마지못해 가는 곳이고, 자기 계발과 상관없이 돈 벌기 위해 다니는 수단 같은 존재 아니던가. 그런 관념이 당연했던 나는 MBC <PD 수첩> 진행을 맡은 한학수 PD의 강연을 듣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자신의 직업에 대해 저토록 자부심이 가득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고?



<PD 수첩>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던 프로그램이다. 나보다 오래된 분이신지라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사과는 왜 사과일까’라고 의문을 품지 않는 것처럼.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도 모르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다. 그러나 강연에서 한학수 PD가 “<PD 수첩>에는 대놓고 PD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느냐고, 그에 따른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 머리가 일순간 멍해졌다. 기자가 아닌데 탐사 보도를 하는 그들에게 오죽 많은 경계 섞인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을까. 그럼에도 약 30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며,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맏형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또 얼마나 무수한 사람들이 노력했을까. 이 프로그램의 이름만으로도 PD라는 직업의 편견과 맞서고 있었음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제야 보이고, 자세히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PD 수첩>은 제대로 시청한 적이 거의 없고, 이번에 MBC에서 새로 시작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존재조차 몰랐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이미 <PD 수첩>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3월과 4월에 <PD 수첩>은 쓰레기 산, 쓰레기 대란에 대해 두 편에 걸쳐 집중 조명했다. 그 결과 4월 23일 방송이 끝나고, 정부는 4월 24일 예산이 추가되어, 쓰레기 산 처리 시기를 훨씬 앞당기게 되었다고 25일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내가 뉴스 기사로 접한 것 중에 적지 않은 부분이 탐사 보도에서 다룬 결과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강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단연 고소나 민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원래 사람은 좀 자극적인 맛에 끌리게 되어 있다) 한학수 PD는 <PD 수첩>이 최근 일 년 동안 다른 탐사 보도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고소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실명 공개. 故장자연 씨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의 실명을 처음 공개한 곳도 바로 <PD 수첩>이다. 이제는 그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어서 자연스러웠던 것이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자연스럽지 않았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PD 수첩>은 공적인 일에 공인이 연루되어 있다면 무조건 실명을 공개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면 이런 행보를 걸을 수 있는지. 그들의 배짱에 존경을 표하는 바다.

   




자신 앞으로 고소장이 날아오고, 본인들이 취재한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고, 정치권부터 종교계까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림에도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아, 그 원동력이 자부심이었나 보다. 외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수록 본인들이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확신한 것이 아닐까.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믿고, 근거 있는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운을 보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막힘이 없고, 결코 눈을 피하는 일이 없는 의연한 눈빛 같은 것 말이다. 문득 ‘나도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샘솟았다.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됐을 때쯤,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에게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까, 자부심으로 가득해서 과거 행적을 말할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을 수 있을까. 때때로 멋진 어른이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강연을 통해 그 해답 한 조각을 발견한 기분이다. 

당신은 직업에 자부심이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우리가 믿게될 MB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