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서 좋고 아쉬운 부분에 대하여
MBC 수목드라마 <봄밤>이 어느새 6화나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12화지만, 이해하기 쉽게 6화라고 해두자) 벌써 절반 문턱 즈음 온 이 드라마를 나는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처음 존재를 알게 된 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끝이 나고 기사로 접했던 것 같다. 안판석 감독과 정해인 X 손예진이 다시 뭉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번복했다가, 정해인 합류는 사실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그 이후로도 오보가 많았다. 정해인 씨가 <봄밤>에서도 연하남으로 나온다는 기사를 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 기사 덕분에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그것도 같은 감독님과 연달아 (배우와 감독이 여러 번 찍기도 하지만, 연속으로 함께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정도로 매력적인 극인 걸까. 그는 왜 선택한 것일까. 무엇에 끌렸을지 의문은 커져만 갔고, 마침내 드라마를 보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도 본 시청자 관점에서 어떤 부분이 더 좋았고 아쉬웠는지 딱 하나씩만 꼽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좋은 점]
우선 갈등이 고조되어 좋았다. 세상에나, 벌써 정해인 씨가 애 아빠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볼 줄이야. 미혼부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극은 처음 본 것 같다. 기존에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보통 미혼모가 더 흔히 나오지 미혼부 이야기는 훨씬 드문 게 사실이다. 아이가 있는 유지호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이정인이 집안에서 또 사회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할지 뻔하다. 유지호 역시 편견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항상 멈칫할 수밖에 없다. 유지호를 결혼시키려고 하는 어머니마저 당연히 이혼한 여성을 주선할 생각을 하는 부분에서 얼마나 색안경이 공공연한지 잘 드러난다.
또 현재 이정인의 남자 친구로 등장하는 권기석 역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 씨 남자 친구로 등장한 이규민보다 훨씬 괜찮은 남자이다. 적어도 바람을 핀 주제에 지질하게 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드라마에서 대놓고 그를 쓰레기로 만들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이정인과 유지호가 넘어야 할 산은 훨씬 가파르게 된다. 물론 6년 가까이 되는 연애 동안 늘 무심하게 피곤한 건 적당히 피해 가면서 정인을 내버려 두긴 했지만, 정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봤을 땐 그들 연애에 헤어질 만한 직접적 이유가 없다.
기석의 아버지가 꼭 필요한 정인의 아버지는 정인과 기석이 결혼에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바랄 것이다. 이렇듯 각자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관계는 고작 6살 연하 (요즘 시대엔 정말 ‘고작’이다), 이미 집안끼리 친했던 사이, 그다지 좋지 못한 가정환경을 둔 남자가 갈등 요소 전부였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보다 훨씬 개연성 있게 다가온다. 유지호를 반대할 부모님의 입장도, 유지호에게 밀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할 권기석도 이해가 되니 말이다. 솔직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는 누가 봐도 전 남자 친구가 쓰레기고, 서준희 (정해인 씨)가 훨씬 괜찮은 남자임에도 위에 적힌 이유로 반대하는 어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쉬운 점]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잘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크게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배우진들 상당수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겹친다는 점이다. 물론 두 작품 중 하나만 보는 시청자에겐 해당하지 않을 문제겠지만, 두 작품 다 본 입장에서는 꽤나 불편했다. 특히 1, 2화를 볼 때 심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막을 내린 지 고작 일 년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시청자들 머릿속에 인물들과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 동일한 장르에서 똑같은 배우가 다른 역할을 맡으니 첫 방송을 볼 땐 ‘어, 저분도 나오네?’ 혹은 ‘저번에는 손예진 아빠였는데 이번에는 정해인 아빠네?’라는 생각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특히 현재 이정인 여동생으로 출연하는 이재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 씨 직장 동료 (후배가 아닌 동료이다)로 나왔던 배우이다. 전작에서는 손예진 씨와 동료로 나왔다가 이번에는 한지민 씨 여동생이라니. 아무리 봐도 ‘친구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봄밤> 속 역할에 많이 적응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서인 (한지민 씨 언니 역) 상사로 등장하는 분을 볼 때마다 잠깐씩 ‘손예진 씨 회사 대표님이었는데’가 스쳐 지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꼭 이렇게 같은 배우분들을 또다시 캐스팅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도 기회가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싶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제 6화까지 온 드라마답게 아직 폭풍전야 상태이다. 곧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유지호와 이정인의 관계를 알게 될 것이고, 과연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몹시 궁금하다. 기석이 한풀이를 할 거라고 예고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될지도 기다려진다. 사실은 바람이나 불륜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보는 건 <봄밤>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나도 몰래 만나는 것처럼 한껏 긴장한 채로 보게 되는데, 이게 웬만한 스릴러 뺨치는 쫄리는(?) 맛을 선사한다. 홀로 ‘감정 스릴러’라고 부르고 있는 <봄밤>, 모르긴 몰라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보다 훨씬 극적이고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예상이 맞는지는 결말까지 지켜보면 알겠지, 뭐.
어쩌면 봄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봄밤>에 빠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