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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 없이 달리기 Nov 07. 2023

조금은 아쉽게 달려볼까요?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보통 저녁 8시 정도가 된다. 요즘같이 날씨가 선선한 가을날씨에는 해가 저물어버린 밤에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일상의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어제도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집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왔다. 20~30분 걷기를 하면 대단한 다이어트 효과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풍경이랄 것도 없지만 꼭 도시 산책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랄까. 이때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 평소에 바삐 살다 보면 나와 내 주변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통제력을 잃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런 전지적 작가 시점은 세상에서 잃어버린 통제력을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야외활동을 통한 통제력 회복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나는 되도록 야외에서 달리는 걸 선호한다.(반대로 실내에서는 거의 달리지 않다시피 한다.)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야외 달리기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극한의 계절에서의 달리기는 꾀나 힘든 편에 속하기도 하고 복장이나 시간대의 제약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강박적이게 스케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수가 있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많은 야외 달리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나 가을의 달리기는 가장 좋은 계절의 달리기이기도 하고, 다양한 행사를 하며 기분을 전환할 기회가 많기도 하다.


달리기를 하며 여러 좋은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날씨가 선선해져 달리기 좋아지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주변에도 달리기를 부쩍 많이 권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이 시큰둥한 반응일 때가 많다. 지금 당장 달릴 마음이 없다는 무언의 거절인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달리기라는 운동이 지루하며 힘든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운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주제로 주변사람들과 담소를 길게 나눠보면, 달리기가 어렵고 지겨운 운동이라서 벽을 쌓는다기보다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서 뛰기를 망설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다 보면 뛰고 싶은데 어떻게 뛰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언젠간 시작해 보겠다는 막연한 답글이 종종 달리곤 한다.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뛰고 싶기는 한데 도통 어떻게 달려야 할지 약간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뉘앙스로 들린다. 지금생각해 보면 약 8년 전 달리기를 취미로서 처음 접했을 때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오해 말길 내가 달리기를 취미로 이어오기 '시작'한 건 22년도의 일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도 한다(요즘도 그리 부르는지 모르겠다). 원래는 정보의 양이 지구의 바닷물만큼 방대해서 인데, 사실은 드넓은 바다에서 원하는 물고기를 잡기 어려워서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그만큼 정보의 바다에서 개인이 가진 낚싯대 하나로 물고기 하나 잡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요즘에는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양질의 정보가 아무리 많더라도 초보자는 올바른 정보를 필터링할 능력이 부족하고 결국 겉이 화려한 콘텐츠에 끌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언제나 우리를 앞선 상태로 우리를 현혹하기 좋게 진화해 나간다. 


 이러한 정보의 바다에서 원하는 결과를 찾아내지 못한 십여 년 전의 나 역시도 달리기를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어떤 정보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몰라 결국 나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간단 무식 하지만 확실한 방법 '그저 열심히 달리는' 전략(?)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거의 매일 숨이 가쁠 정도의 빠른 속도로 2-3km 정도를 달렸다. 체력에 비해 고강도훈련을 연일 이어가니 몸이 지칠뿐더러 달리기를 하는 과정자체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 오래 달리기를 이어 달리지 못한 기억이 있다. 결국 그 당시 목표했던 10k 단축마라톤을 끝으로 달리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달리기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때의 달리기 다시 되짚어보면  고통스럽고 지루했던 경험이었다는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항상 다음 달리기가 기다려진다. 이 느낌을 조금은 공감 갈만하게 비유해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주말 드라마가 있고 드라마를 보는 순간도 매우 즐거울 뿐만 아니라, 한주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면 다음 주 에피소드가 매우 기다려지는 형태에 가깝다. 다행히도(?) 이런 달리기를 향한 애정은 아직 식기는커녕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기전이 드라마가 사람을 홀리는 기전과 흡사한 면이 꽤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 드라마가 내 일상을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간다. OTT나 유튜브를 중심으로 볼만한 콘텐츠가 많이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걸 보든 평균이상 볼만하다(반대로 엄청난 반전의 재미를 주는 작품은 오히려 줄은 것 같기는 하지만). 추측건대 아마 요즘 온라인 기반의 콘텐츠 플랫폼들이 소비자들의 시청각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러한 패턴을 분석하면서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참고하고 있지 않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심이긴 하지만.. 이런 뇌과학적 분석 없이 나의 일상을 순삭 시키는데 매 순간 성공한다고? 그건 로또 당첨 확률만큼이나 낮은 확률이지 않을까? 


 이야기에 대한 플롯을 내가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는 분명한 강약조절이 있다. 에피소드의 전체 이야기를 관장하는 하나의 메인스트림은 분명히 존재하되 대부분의 이야기는 시청자를 릴랙스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꾸미고 에피소드의 종반부에 되어서 이야기를 폭발시킨다. 그렇다고 에피소드가 가진 모든 폭죽을 한 번에 터트리는가? 아니다. 한 두발의 폭죽은 꼭 남겨두고 다음 에피소드를 강제적으로 시청하게 한다. 


 나는 대부분의 달리기를 설렁설렁 달리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달리기 처음은 지루할 정도로 매우 느린 속도로 시작한다. 달리기를 중단시킬 정도로 매우 지루한 속도에 가깝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내하고 달리기를 이어나간다. 그렇게 10~20분 정도 지나면 몸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는데, 이때는 스마트워치의 속도계를 보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져 버려 스퍼트를 한번 쑥 올리는 시점이 온다. 곧네 체력의 저하를 느끼고 다시 느린 속도의 페이스를 10~20분간 유지한다. 그리고 레이스의 마지막 10~20분은 남은 체력을 최대한 소진하기 위해서 페이스를 올리거나, 달리는 거리를 조금 더 늘린다. 이런 식으로 30분에서 1시간의 조깅페이스는 자연스러운 리듬을 형성하며 달리기 전반을 지루하지 않게 조율해 주는 것이다. 그럼 달리기의 마지막 5분은 어떠한가? 있는 힘을 쏙 빼놓아 나를 밀어붙이는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최소 10~20분 정도는 더 달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레이스를 종료한다. 이런 식으로 뭔가 마지막에 아쉬움을 조금 남겨야 다음 달리기가 기다려지고, 몸에 부담도 적으니 심리적인 장벽이나 스트레스도 최소화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걷기를 달리기 루틴에 추가하며 달리기 시작하기도 했다. 전체 레이스에서 1~2분 정도 걷는다고 몸이 엄청 뒤처지는 것도 아닌 데다가, 오히려 1분 정도의 휴식으로 인해 그 이후의 달리기 전체가 매우 편해지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걷기를 '워크브레이크'라고도 한다는데, 어쨌든 이러한 달리기 중간의 짧은 걷기 휴식이 전체적인 기록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무엇보다 달리는 게 괴롭지 않아서 너무 좋다).


 달리기는 부담스러운 운동이 맞다. 절반이 넘는 러너(Runner)가 부상 때문에 달리기를 그만둔 경험이 있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의사는 '달리기'를 매우 권하지만, '마라톤'은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으로 권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리기'와 '마라톤' 사이의 어딘가에서 건강한 달리기를 즐겨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라톤을 하듯이 달린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사람을 매우 수고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달리기는 달리기다. 그냥 폴짝폴짝 뛰러 나가면 된다. 현재 입고 있는 복장 그대로 입고 뛰어도 좋다. 내가 언제 달려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다. 간단하게 1분 정도만 폴짝폴짝 뛰어도 충분히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고서는 체력이 남는가? 그러면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시길 Nexflix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럼 매번 다음 달리기가 기다려지고 달리는 순간 또한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 : 오랜만에 글쓰기네요. 몇일 쉬었다고 다시 문장력이 굳은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요즘은 날이 많이 추워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게 느껴집니다. 독자님들 감기 조심하시고요.

혹시 독자님들중에서 러너가 계시다면 가을달리기 잘 마무리하시고, 겨울달리기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엔딩크레딧! GPS로 뛰어서 그린 강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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