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은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적지 않은 시간을 대외활동을 하면서 보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모인 일종의 10~20명 정도 되는 소모임이었는데, 팀원들과 1~2년 정도를 고등학교 다니는 것처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를 매일같이 함께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전투적으로 학습했고 서로를 전우로 여길 정도로 서로를 잘 알았다.
하지만 20대 자기 계발의 끝이 대부분 취업이듯이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서로의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흩뿌려졌다. 우리의 인연이 거짓이 아님에는 분명하지만 20대 후반에 접어든 후부터 최근 5년 정도는 누가 결혼하거나 하는 큰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서로 만나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거의 몇 안 되는 진리에 가까운 말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왜인지 모르게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의 나 같으면 모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리가 없다. 최근에 나도 좀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모임을 추진한 순간이 그중 한 순간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싱겁게 얼굴 한 번 보자는 얘기를 꺼냈을 리가 없다. 매우 적은 확률로 내가 모임을 추진했다면 그와 동시에 "내가 왜 하지 않던 행동을 할까?" 하며 나의 자발적 동기를 이성적으로 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이성적 사고는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남을 원하니 만나자!"라고 생각을 급히 매듭짓고 모임을 적극 추진했다. (실제로 만남의 자리에서 내가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모임을 추구하는 게 의외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한자리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다. 만난 시간보다 만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어서 서먹할 법도 하지만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는 것처럼 편안했다. 역시 짧은 순간이었지만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아무튼 좋은 음식점에서 술까지 함께하니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우리는 각자 다른 대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갖은 후에 인연을 맺은 사이인데, 그만큼 각자 일하고 있는 필드가 각양각색이어서 대화의 주체는 더욱 풍성해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만 묻고 떠들어도 오디오가 빌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질문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나는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대답을 한 번에 내뱉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그간의 모임에 불참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 답변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왜 모임에 불참하였는가? 나는 그 물음에 답을 찾아내기 위해 무의식 깊은 곳까지 기억을 들여다봐야만 했다. 다행히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아마 당시에 나도 모르게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사이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다른 대학교의 다른 전공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외활동의 연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중 나는 거의 유일하게 경기도권의 학교를 다니고 있는 팀원이었고 대부분 서울권의 이름만 들으면 아는 학교 학생들이었다. 편입을 하거나 대기업 공채를 위해 취업도 더는 미룰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서, 첫 회사는 평범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들은 대기업에 곧잘 취직하는 듯 보였는데, 같은 시기에 비슷한 노력을 했음에도 나 혼자 뒤처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어 얼굴을 내비치기 부끄러던 것이다.
이런 과거의 내 모습과 심리상태를 떠올리면서 흥미로웠던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로 과거에 나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타인들과 거리를 두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무의식 한켠에 가두었던 것 같다. 둘째로 나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타인에게 노출시켜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을 무의식 속에 많은 것들을 감추고 살아왔다는 점을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나는 취직 후 비교적 최근까지 각성과 긴장상태를 유지해 왔는데, 교감신경을 자극하며 공부와 일에 매달려옴과 동시에 내가 처한 좋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부인(Deny)하는 형태를 취하여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떻게든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지려 하고 관심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서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귀신같은 형체가 보이고, 고개를 돌려버리면 놀라 자빠져버릴게 뻔하니 최대한 그곳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서 좋은 것에 매달려왔다. 예를 들면 동기부여 영상을 자주 보거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노래만 반복적으로 듣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부적이나 주문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불안감이 많았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불안을 반감시키기 위해 동기부여 영상이나 노래와 같은 외부의 콘텐츠를 이용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 계획적인 성향도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그러니까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굳어진 성향이겠다. 게다가 나는 안전에도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편인데, 집에 있는 멀티탭에 구매일자를 적어놓고 주기에 맞게 교체해 주거나, 소화기를 적정한 위치에 놓는 등이 그렇다. 어찌 됐든 대비해 두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니 계획적으로 살아왔던 거 같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나를 계획을 잘 짜고 위험관리를 잘하는 스타일로 칭찬을 해주곤 했지만, 사실 이런 성격은 단순히 불안한 마음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가령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을 조심하거나 하는 행동이 사실은 상대방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서 기인했다거나, 미팅이나 면접, 발표와 같이 스피커를 하는 역할에서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한 경험이 사실은 미팅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가지 (대부분은 Negative에 가까운) 예상질문을 하고 대비하기 때문이었다는 점들이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천사의 탈을 한 악마에 가까워서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결국은 나를 힘들게 하는 구석도 존재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불안한 마음은 나의 삶을 더 계획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이끌 수 있게 도와주는 쪽으로 물질적 보상을 주었으나, 결론적으로는 나의 마음을 보살피지 못하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방해하여 마음에는 가뭄이 들게 하였던 것이다. 전형적인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의 수법이 아니었을까?
이상상황을 언제부터 인지하기 시작했는가? 그 시작점은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하다. 이 질문은 '언제부터 나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보살피기 시작했는가?'를 물으면 쉽게 답변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대 집중하고 보살피기 시작한 것은 역시나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이곳저곳에 통증을 많이 경험했는데, 몸을 잘 풀지 않은 상태로 달리거나 조심해서 달리더라도 이내 대미지가 누적되어 중장기적인 통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Just do it!' 등의 도전적인 격언은 적어도 내가 달리기를 할 때는 통용이 되지 않는 말인듯했다.
그래서 나는 매 한 발짝 한 발짝 뛸 때마다 몸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세를 교정하면서 달려야 했다. 이 경험이 나의 정신과 몸의 첫 번째 조율로 기억한다. 이때부터 나의 사고는 나의 신체와 감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관심이 점점 커져 나를 보살피는 영역까지 확장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달리기 주법에 오답은 있을지언정 하나의 정답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나에게 집중하며 나만의 스타일로 달리기를 완성해 나아갈 수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감각에 기울이는 달리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나름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처음의 5분 정도의 달리기는 매우 천천히 달리며 주법을 체크한다. 달리면서 나의 발구름과 느껴보고 발구름에서 전해지는 힘이 종아리에 무리하게 실려 불필요한 체공시간이 발생하지 않는지, 그리고 그 힘이 이어져 적절하게 허벅지에 전달이 되는지, 마지막으로 허벅지는 그 힘을 뛰는 것이 아닌 앞으로 달려 나가는 힘으로 사용하는지 등을 매발자국마다 신경 쓰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 5~10분 정도를 천천히 달리면 어느 정도 자세가 몸에 익고 이후에는 자세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몸에 큰 대미지가 쌓이지 않는다.
그 이후에는 페이스에 집중한다.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가 내가 계획한 속도가 맞는지 리듬을 계속 유지하려고 힘쓰는 것이다. 심장속도가 올라가면 내가 느끼는 외부의 시간이 느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빠르게 달리게 되기 때문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페이스를 잃고 오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심박수에 관계없이 최대한 침착함과 속도를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이 역시 나의 감각에 집중하는 과정 중 하나다.
레이싱의 마지막에는 내가 얼마나 더 달릴 수 있는 상태인가에 집중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달리면 부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유종의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달리기 종반부에 나의 몸에 집중하는 대신 순간적 욕망이나 타인의 시선에 집중해 버리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종종 찾아온다.
이렇게 나는 나의 몸을 유리잔 보듯 애지중지하면서 달린다. 나의 각각의 신체부위(비록 하체위주이기는 하지만)에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고, 몸이 수행하는 고통의 정도에 집중한다.
예전이었다면 나의 몸에 집중하기보다, "잘 달리는 법", "달리기 훈련법", "달리기 동기부여"등을 보면서 어떻게든 외부의 콘텐츠에 나를 녹여내는 방법으로 달리기를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나에게 집중하며 나만의 달리기를 해나간다는 점에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한결같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의 신체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의식적으로 몸과 교감하기 시작했고 통제력을 갖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통용되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말은 우리가 살면서 꽤나 많이 하고 많이 듣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한결같지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생각을 반영된 언어는 우리를 구성하기도 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또 바뀌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신학적으로 뇌는 생각보다 한결같지 않다고 한다. 뇌는 생각보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유연함이 뇌가 가진 최대 장점 중 하나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최근에 나도 변했구나 느꼈던 경험들을 통해서 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는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외부에 집중하며 걱정이 많은 불안한 삶을 많이 살았던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달리기는 나의 신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요즘은 시체감각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내가 생각하고 나의 마음에 대해서도 집중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성과'나 '완벽주의'라는 것들에 절여져 있어서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기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슬슬 '여유'라던지 '공감'이 주는 느낌에 스며들어 눈뜨기 시작하는듯하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 외에는 글을 읽지도 않았던 내가 요즘에는 에세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주로 찾는 것 보면 무언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한결같다는 말이 듣기 좋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한결같고 변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있는 그대로 굳어져 갔을 것만 같단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결같지 않더라도 보다 풍성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무로 표현하자면 너무 올곧게만 자라는 나무보다는 조금 삐뚤빼뚤하더라도 풍성한 나무가 되길 소망하는 것에 가깝다. 올곧게 자라는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나무는 내게는 크게 매력적이게 보이지 않는다. 대나무가 대표적이겠다. 대나무는 서로가 숲을 이뤘을 때 웅장하고 풍성하지만 독립적인 존재로는 감흥이 확실히 덜하다.
내가 사는 인천에는 인천대공원이 있는데, 공원 가장 안쪽에는 '장수동 은행나무'라고 해서 수령이 약 8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나무가 있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동네사람들이 가을이면 찾는 지역 명소이기도 한데 가을에는 노란빛이 깊게 물들어 보고 있는 사람을 꽤나 압도한다. 언젠가는 여름에 방문해 본적도 있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지가 가는 행인들에게는 시원한 그늘도 제공해 줄 정도로 가지가 무성하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꼬불꼬불하더라도 심지가 굻고, 그리고 옆으로 넓게 무성한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들의 모양도 규칙적이지 않고 자란 모습도 지맘대로 이리저리 변덕스럽게 보이기도 하여, 원형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성한 나무. 그래도 심지는 굵어 줏대는 있지만 고집스럽지는 않게 스스로 풍성한 나무, 그리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때로는 사람들을 압도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편한 쉼터를 주는 나무,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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