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존재감 , 자아존재감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은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집안을 잘 꾸밀 수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중 괜찮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필요가 없어진 물건을 곧잘 버리는 편인 것 같다. 새물건이더라도 내게 필요하지 않아 진다면 아까운 마음을 잘 누르고 폐기처분한다. 물건을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걸 정리하는 습관은 특히 유튜브 채널을 정리하는데서 빛을 발한다. "구독을 해두면 언젠간 찾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그런 일은 잘 없더라. 그래서 가차 없이 구독채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은 물건과 다르게 나중에 재구독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시작하자 정리가 한결 더 수월했다.
그러다 보니 재생리스트는 자연스럽게 최근 관심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재생리스트에 있는 영상은 빠짐없이 시청하는 편이다. 최근 나의 최대 관심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달리기 채널이다. 더불어 요즘은 심리학에도 조금 빠져있는 상태다. 이런 관심사를 보니 확실히 나는 나 자신과 나의 인생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는 달리기와 심리학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달리기와 관련된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채널에서 공통의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들이 있다. 달리기(특히 마라톤)와 인생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얘기하는 점이 그러하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최근에는 그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정한 순간만을 인생과 비교한다면 인생이랑 비슷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여행도 인생이요, 자전거 타는 것도 인생이요, 독서도 인생이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인생일 것이다. 그저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경험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인생과 비슷해 보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포함하여 세간에서 인생과 달리기가 비슷하다는 의견이 정말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내가 자라면서 경험한 문화나 콘텐츠에 단순히 이끌린 고정관념인지 분간해 낼 수가 없었다. 후자였다면 단순히 기계적으로 학습된 어쩌면 폭력적인 기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나만의 기준으로 외부의 글과 소리에 맞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듣는 말과 글이 우리의 생각을 가두는 형태에 도움을 준다면 그만큼 조용한 폭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동안 달리기와 인생에 대해서 연관 짓기를 억지로 멀리했다. 무엇이 진실인 줄 알기 힘들다고 생각하니 인생과 달리기를 연관 짓는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달리기라는 소재를 억지로 인생이라는 톱니바퀴에 맞물리려는 인위적인 과정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요즘 '깨어있다'거나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고, 인생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풍성하게 바라볼 기회가 많아졌다. 최근 심리학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지금 나의 지식으로는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생물학적이나 인문학적으로 깊이 파헤칠 수는 없겠으나, 실제로 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내가 뭘 원하는지 알면 알수록 자기 존재감이나 자아존중감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쉽게 말해서 인생에 만족감이 점점 높아졌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생각의 관점의 변화인 걸까? 아니면 정말 내가 행하고 있는 달리기와 인생의 떼려야 뗼 수 없는 연결고리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최근 이 질문에 나름대로의 나만의 답을 찾아낸 것 같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그 계기는 한 글귀를 접한 순간이었는데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내가 요즘 깨어있다거나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은 보통 '현재'에 집중한 순간이었다. 반대로 무언가에 집중력을 빼앗겨 버린 날(대표적으로 유튜브 쇼츠로 하루를 허비한 날)이면 하루 전체가 집중이 되지 않고 인생을 허비한 느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런 날에 나는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이나 배웠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크게 떨어졌다.
이런 날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어떤 자유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때의 나는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움직이는 (생물학적으로 살아있기만 한) 지구상의 여러 기계 중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원인을 '현실'에 머물지 않고 삶을 수동적으로 허비할 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동적인 활동의 대표적인 건 영상시청이다. 영상을 시청할 태 콘텐츠는 우리가 이해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시간대로 자기 할 말만 한다.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콘텐츠가 흘러가는 속도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콘텐츠의 유속에 이기지 못하고 정보를 흘려보낸다. 소위 말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식이다.
반대로 최근 내 삶에 적극적인 형태의 활동이 있었다면 그것은 역시 달리기였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 꽤나 몸을 애지중지하면서 달리다는 것을 글 이곳 저것에서 밝힌 바가 있었는데, 한 발짝 한 발짝 자세에 신경 쓰는 달리기는 매 순간 몰입해야만 하는 달리기라 현재에 머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단 이런 주법에 신경 쓰는 달리기를 논외로 하더라도, 달리기를 하면 신경이 바로서고 내가 숨이 찬다거나, 맥박이 빨라졌다거나, 혹은 근육의 어디가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위로 분산된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하게 된다. 달리기라는 모든 유기적인 활동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나에게로 향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조차 결국 달리기라는 소재를 인위적으로 가공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자들은 잘 알겠지만, 달리기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분명 마라토너나 *SUB-3 주자를 우러러보기는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주자는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의 세계 안에서 정하고, 그 세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호흡, 주법, 컨디션 등에 대한 나에 대한 집중은 초보 러너라도 1-2km만 뛰어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우리 삶은 언제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시각으로 해석된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누구는 긍정적으로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며,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바로보아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채우거나 덜어내는 삶을 산다. 이러한 시각은 철저히 '나'라는 주체에서 필터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을 이해하려면 외부로 분산된 시선을 나에게 집중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해석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내가 나를 어떻게 보기 시작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한다.
달리기 자체가 인생과 비슷해서가 아니라, 달리기는 현재에 머물기 매우 좋은 활동 중 하나라서가 인생을 비추는 통로로 쓰이는 것이 아닐까? 마침내 나는 달리기라는 소재에 대해서 스스로의 시각으로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듯하여 조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르는 순간 2~3년 뒤에 벌어질 막연한 걱정거리를 떠올릴 수는 없다. 이 순간 주자의 단 한 가지 목표는 앞으로 전진! 그리고 숨쉬기! 뿐이다. 모든 감각은 현재에 머물고 이내 내 시선으로 사물과 현상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가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을 비추는 통로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는가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달리기를 하는순간 인생을 내 시선으로 바로보게 되는게 아닐까? 그래서 달리기와 인생이 공통점이 많다고 착각하는게 아닐까?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삶을 바로 볼 수 있다. 나의 필터 없이는 삶에 대한 내 시각이 타자의 생각에 동화되어 복사된 것인지, 정말로 나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된 시각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SUB-3 :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