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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데 Josh고

어데 Josh고?) 내 시간은 신성하다.

by 퇴근후작가

Josh는 시간관리에 굉장히 타이트한 사람이다.
회의 시작 5분 전에 앉아 있고, 메일 회신 속도는 카톡급이다.


그런 그가 최근 꽂힌 주제는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회사는 구내식당 좌석이 부족해서, 층별로 점심시간이 다르다.
11시부터 2시까지 릴레이처럼 먹는데, 인사개편으로 우리 팀이 이사를 하면서 점심 타임이 뒤로 밀렸다.
문제는, 뒤로 갈수록 줄이 길어진다는 것. 밥 먹는 데보다 기다리는 데 시간을 더 쓴다.

그래서 대부분의 팀은 슬쩍 10분 일찍 내려가 먹는다.
일종의 회사 공공연한 관례랄까.
하지만 우리 팀엔 그런 편법이 통하지 않았다.
바로 “규칙은 규칙(rule is a rule)”을 외치는 Josh 때문이다.

그는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물론 돌아올 때는 대체로 칼 무뎌진 사람처럼 유연했다.)
게다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먹는 날도 있었다.
결국 팀원들은 Josh의 ‘정의감’ 덕분에 배고픈 정의를 실천해야 했다.


어느 날 Josh가 물었다.
“우리도 점심시간 좀 유연하게 가져보면 어때요?”
잠깐, 뭐야 — 드디어 양심이 생긴 건가?
팀의 오피니언 리더 한 명이 말했다.
“저는 다른 팀처럼 10분 일찍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Josh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그럴 거면 질문은 왜 한 거야, Josh야.)

그날 점심, 팀원들은 씩씩거리며 밥을 삼켰고
티타임 시간엔 Josh 없는 ‘한타’가 벌어졌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럴 리가 없지. Josh니까.


한두 달 뒤, 한국시리즈가 열리던 날이었다.
Josh는 광적인 LG 트윈스 팬이다.
그날 오후 5시쯤, 그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존재감은 워낙 뚜렷해서, 없어지면 금방 알 수 있다.

“Josh 어디 갔어?”
“퇴근했어요.”
“반차 냈어?”
“아뇨.”
“그럼 뭐야?”

“오늘 한국시리즈 있잖아요. 그래서 1시간 일찍 퇴근했대요.”

...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 모든 규칙은 신성하다.
단, 본인의 야구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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