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고도 5,643m 칼라파타르를 향한 히말라야 트레킹
이제 어느 정도 추위에 익숙해진 건지, 간밤에 그리 춥지는 않았으나, 높은 고도 때문인지 중간에 계속 깼다.
침낭 밖은 역시나 얼음장 같았고, 방 안에 이슬이라도 맺히는지 축축한 느낌마저 들었다.
샤워를 못한 지 4일째 되는 날이다.
고산병 증세를 예방하기 위해서 라고는 하나, 씻지 못하는 게 이리도 괴로운 일인 줄은 몰랐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게 이토록 간절한 건 아마 처음이 아닐까.
‘목욕탕 가고 싶다...’
온탕에 오래도록 몸 담그고 쉬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갈 곳이 정해진 것 같다.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으로 계란 볶음밥을 주문하고, 방으로 올라와 떠날 채비를 했다.
오늘 목적지는 고도 3,860m의 ‘텡보체’라는 마을로 약 5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인데 더 높은 고도로 오르기에, 아침식사로는 좀 더 소화되기 쉬운 걸 주문했어야 했는데 양이 많은 걸 주문해서 소화가 잘 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롯지 주인아저씨께서 따뜻한 밀크티를 공짜로 주시며 배웅해주셨다.
아저씨께 하산할 때 이곳에 또 온다고 했는데..
글쎄... 다시 이곳에 올지는..?
어제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 올랐던 뒷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중간에 표지판과 함께 옆으로 난 길이 있었고, EBC 트레킹 코스는 그쪽으로 가면 된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야크나 당나귀들이 지나다니는데 그때마다 조심히 벽 쪽에 서서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
절벽 쪽에 있다가 그들이 밀기라도 하는 날엔...
절벽에 난 길을 따라 쭉 따라 걸으면 히말라야의 깊은 골짜기 사이로 유유히 맴돌고 있는 독수리와 저 멀리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다.
Hey, South Korean friend !!
어제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뒷산에 올랐을 때 봤던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침 이 친구들도 가이드나 포터 없이 가는 데다 오늘 목적지도 같기에 동행하기로 했다.
네 명 모두 호주 브리즈번에서 왔다고 하는데,
호주에서 2년간 살았던 나는 왠지 모를 반가움이 들었다.
혼자서 걷는 것도 좋았지만, 여럿이서 걷는 것도 즐겁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캉주마’라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성수기가 아님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성수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까?
먹을 것 주변을 맴도는 당나귀인지 말인지..
약 5분 정도의 휴식을 취한 뒤, 가던 길을 재촉했다.
캉주마를 지나 푼키텡가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어휴.. 내려간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텐데..
텡보체 마을은 푼키텡가에서 약 2시간 거리로, 고도 600미터나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해발고도 3,000미터 이상이 되면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턱 밑까지 금세 차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길은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이기에,
푼키텡가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으며 충분히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나서 오후 1시쯤 텡보체로 향했다.
다들 내가 걷는 속도가 딱 적당하고 좋다며 내게 선두로 걷기를 원했고, 내가 선두로 천천히 한발 한발,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올라갔다.
그래도 숨은 숨대로 차고, 목은 목대로 마르고, 이놈의 오르막의 끝은 안 보이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진을 뒷전으로 하고 카메라를 그저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짐덩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여러 번의 트레킹과 등산 경험상 멀리 있는 목적지를 바라보기보다는 발 끝을 보며 한발 한발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코앞으로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든지 서두르면 일을 망치기 쉽고, 여유를 가지며 천천히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텡보체(3,860m).
시간은 오후 4시에 가까웠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롯지에 들어가 체크인했다.
꽤나 뷰가 좋은 방이었다.
정면에 왼쪽으로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아마다블람이 보이는 방이었다.
냉기로 가득한 방을 두고, 밑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 중앙에 난로를 두고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난로에는 장작을 넣어 꽤나 따뜻했다.
아아.. 난로다..! 난로!!!
네팔에서 처음 만난 난로였다.
무엇이든 없어져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한겨울의 한국 날씨는 이보다 조금 다 춥겠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더 춥고 혹독하게 느껴지는 건 제대로 된 난방시설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불에 지핀 난로 주위로 롯지에 묵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난로 주위와는 대조적으로, 바깥은 구름들로 가득했고 더욱 추워졌다.
이곳은 해발고도 약 3,900미터.
듣기로는 100미터를 오를 때마다 기온이 0.75도씩 낮아진다고 한다.
확실히 오를 때마다 점점 더 추워지는 게 뼛속까지 느껴졌다.
난로를 피웠던 식당과는 달리 방은 냉기로 가득했고, 창문 밖으로는 가득했던 구름들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무수히 빛나는 별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나가자!
아무리 추워도 이건 나가서 봐야 해!
추위에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이끌며 밖으로 나왔다.
왼쪽에서부터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
오른쪽에는 높게 솟은 아마다블람(6,856m)
히말라야의 밤은 환상적이었다.
냉혹하리만치 춥지만, 그것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밤하늘을 밝게 빛내는 쏟아질 듯이 무수히 많은 별들.
내가 왜 히말라야에 왔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다.
히말라야는 얼마나 거칠고 냉혹한 곳인지,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수많은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어려운 쿰부 히말라야를 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이왕 가는 트레킹, 쉬운 걸 갔다 오는 걸로는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항상 그래 왔다.
쉬움, 보통, 어려움 세 가지 코스가 있다면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극한의 환경 속에 놓인 나 자신을 보며 항상 후회감이 밀려왔다.
왜 굳이 여기를 왔지? 라고..
하지만, 내가 이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을 때,
해냈을 때 따라오는 보상은 언제나 기대 그 이상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흘린 땀과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돌려준다.
난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