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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EastAgent Oct 03. 2020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불확정성(Uncertainty)에 대하여 

드럼 왕국의 위대한 의사 히루루크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불치의 병이 걸렸을 때? 맹독 버섯 수프를 마실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히루루크처럼 원래 죽음이라고 일컬어지는 거와는 다른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아니 죽음에 대한 정의가 아닌 삶에 대한 정의에 가깝다. 


나는 삶이란 불확정성 (Uncertainty)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것은 불확정성이 높다. 다른 말로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우리가 말하는 죽음은 신체적인 불확정성이 0에 가까운 것과 같다.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정의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사람은 신체가 죽기 전에 미리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를 예측 가능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행동 양식의 다양성은 오히려 감소한다. 그 지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성공 코드는 젊었을 때 불확정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나이가 들었을 때 불확정성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까이서 관찰한 적이 있다. 우선 신체적인 불확정성이 0에 가깝다고 느꼈다. 항상 가는 곳만 갔고 그 외 다른 장소를 갈 의지도 필요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분의 생각을 읽을 순 없었지만 어떤 말에 반응하거나 뭔가를 결정할 때는 항상 일관적이었다. 마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주위 친구들에게 이미지가 판에 박히고 예측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니 불확정성을 거부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은 죽음으로 가는 길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삶이 주는 불안함 반대 방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혹시나 당신의 삶이 불안한 하루의 연속이라면 매우 살아있는(uncertain)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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