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EastAgent Feb 15. 2019

존재와 인식

어떤 그림을 보고 오늘은 존재와 인식의 오묘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구글에 "존재와 인식"을 검색해 보니 어느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이 있었다. "헬로 아티스트"라는 유튜브 채널인데, "존재와 인식 사이"라는 제목으로 장서영이라는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 실제로 영상에서 작가가 "존재와 인식 사이"라는 단어를 언급 하진 않지만, 작가는 사회적 존재와 인식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장서영 작가가 말하길,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즉, 현실에서 분명히 존재 하지만 사회적 조건에 의해 없는 거처럼 취급을 받거나, 또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데도 인식에 의해 존재하는 거처럼 연출되는 상황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비교적 위에서 말하는 "불안정한 존재" (장서영 작가가 정의한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다)를 많이 관찰한다. 특히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권에서 이런 존재들이 자주 목격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여기서 소개할 불안정한 존재는 후배랑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인식한 "어떠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후배들 중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음악가의 길을 걷는 친구가 있다. 나보다 음악에 더 가까이에 있는 후배이기에 난 잘 풀리지 않는 음악적인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물어볼 때마다 후배의 대답은 "모르겠는데용...", "글쎄요..."라는 식의 대답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어떤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후배는 별로 감흥이 없어 보였다. 후배의 감탄하는 방식이 이렇게 무미건조한가 보다고 잠정적 결론 내려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꽤나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늦은 일요일 홍대 근처의 작은 일본식 술집에서 그 후배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팔에 그려진 문신을 가리키며 다소 진지하고 일관된 분위기로 본인이 느낀 감탄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꽤나 신기한 장면이었던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그 작품(문신)에 후배는 상당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후배는 문신의 색깔이 디테일하다고 했었나?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암튼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마치 존재가 눈앞에 있는데 나는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을 후배는 인식하고 있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가끔씩 후배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이 후배는 주어진 공간을 차지하는 많은 색을 볼 수 있는 거 같다. 나에게는 빨갛기만 한 불과 갈색이기만 한 나무이지만 후배에게는 그 안에서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색들 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Nerve of Fire(왼쪽) 와 나무위의 나무 (부제: 부잣집 담벼락)(오른쪽)


 실제로 존재하지만 어떤 사람은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하지 못하는, 위에서 설명한  "불안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존재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인식하는 세상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나에게는 좁은 공간에서의 여러 가지 색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렴풋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지식만 있을 뿐,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만 있을 뿐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나에게 이 글을 쓸 수 있게 한 에너지와 영감을 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선입견이 잔뜩 낀 상태였다. 이 작품은 그 후배의 동생이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그 후배의 작품을 감상할 때처럼 색깔 주의 깊게 관찰했다. 하지만 이내 작품이 말하는 순수함에 압도되었고 반드시 이 작품에 대한 감탄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바다이야기


바다이야기는 그 학생의 집 거실 벽에 그려진 작품이다. 마치 투명한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여기저기 보이는 불가사의한 존재들(인어), 침몰한 배와 보물 상자들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또한 벽지의 색깔과 문양들은 마치 애초에 그림을 위해 만들어진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 냈다"라는 말을 했다.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상은 시간을 너머 미켈란젤로에게 먼저 인식되었고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게 아닐까? 마치 인식하면 존재하게 되는 꿈속에서의 상태처럼 말이다. 


역사적으로 칭찬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걸 향해 달려가 결국 존재를 창조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아냥 거려도 말이다.


이 친구는 어땠을까? 거실의 빈 벽에서 시간을 너머 이 그림을 인식했던 건 아닐까?

이 그림이 존재하기 전과 후를 잠시 상상해 보면 존재를 창조하는 일이 참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