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우유, 그리고 초코우유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은 컴퓨터를 창조했다. 이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관찰함으로써 나는 신과 인간과 컴퓨터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흔히 신은 전지 하고, 전능하며 전재하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전재와 전지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고 전능에 대한 이야기만 다뤄 보도록 하겠다.
"신이란 존재는 전능하다."
이 정의는 이 글에서 반박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이건 수학에서 말하는 공리의 개념으로 내 주장의 출발점이다.
신의 존재를 정의하고 나서 나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보겠다.
"신은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창조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의 어떤 사람이 던진 질문인데 출처를 알 수 없다)
만약 신이 그런 돌을 창조할 수 있다면 자신은 그 돌을 들 수 없기 때문에 전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돌을 창조할 수 없다면 역시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전능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신은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류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단순화시킬 수 있다.
"신은 자기 자신이 아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즉 신은 신이 아닐 수 있는가?"
위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이 신이 아닐 수 있다면 그건 신이 아니기에 전능하지 않고, 신이 아닌 걸 할 수 없다면 그 역시 전능한 것이 아니다.
논리학 교양 과목을 듣던 중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형식 논리학의 한계점 중 하나는 명제는 참/거짓 두 가지 상태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즉, 참인 명제의 부정은 거짓이고 거짓인 명제의 부정은 반드시 참이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흑백 논리나 이분법적 사고가 그 예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우리는 예/아니요 로 대답할 수 있을까? 시간에 따라서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기도 한다. 설문지에서 이런 류의 대답을 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을 것이다. 어떤 질문은 예도 아니 오도 아닌 경우가 현실 세계에선 분명히 존재한다.
사고 실험을 해보자. 초코우유는 초콜릿인가? 초코우유는 우유인가?
초코우유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미래의 시점에서는 초코우유는 초콜릿도 아니고 우유도 아닌 '초코우유'라는 존재이기에 위의 두 명제는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초코우유라는 존재가 없는 과거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초콜릿 농도가 99%이고 우유 농도 1%인 '어떤 것'이 비커에 담겨 있다. 겉으로 보기에 초콜릿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이것'은 초콜릿입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 초콜릿 농도가 1%이고 우유 농도 99%인 '어떤 것'을 향해 "이것은 초콜릿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역시 겉으로 보기에 우유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초콜릿 농도와 우유의 농도를 계속해서 조정해 나갈 것이다. (초콜릿 99%, 우유 1%)에서부터 (초콜릿 1%, 우유 99%)까지 조정해 나갈 때 이 "어떤 것"은 초콜릿이면서 초콜릿이 아닌 경우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위의 예에서 처럼 어떤 명제를 참/거짓으로 구분할 때는, 참도 거짓도 아닌 상태가 반드시 존재 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이제 "신은 신이 아닐 수 있는가"란 질문이 조금 편안하게 다가온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초코우유의 존재처럼 그 존재가 확고해 지기 전의 신이면서 신이 아닌 상태는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은 신이 아닐 수 있는가?"란 명제를 참도 거짓도 아닌 상태로 정의 하므로써 당장 답해야 하는 논쟁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