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거대한 가치관 속에서 성장한다. 어떤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여 더 이상 생각해 볼 필요를 못 느끼게 하는 가치관이 있는가 하면, 지금 현재 도마 위에 올려져 여러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치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치관들은 우리 안에 깊이 젖어들어 있어 실제로는 그 존재 조차 인식되지 못한 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한 개인이 어느 가치관을 인식하고, 그것의 부당함을 모두에게 전달하여 그 사회가 마침내 새로운 가치관을 인식하게 하는 일은 굉장히 귀찮으면서도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해온 역사를 보면, 오히려 가치관의 지속적인 변화야말로 막을 수 없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캡틴마블 속 주인공인 캐럴 댄버스는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에 저항하면서 살아간다. 그녀는 승부욕이 강해서 어렸을 때부터 레이싱 게임이나 공놀이 등 승부 게임을 할 때 악착같이 남자아이들을 이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는 군에 입대하여 남자들도 힘든 훈련을 기어코 도전하는가 하면 흔치 않은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 도전이란 것을 할 때마다 주위에서는 그만두라 거나 넌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딘가에서 항상 들려오는 불특정 다수의 그 목소리들은 시대의 가치관이며 그녀가 하려는 것이 “도전"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의 후반부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가치관을 충실하게 따르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할 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캡틴마블이 자신을 지배하던 가치관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녀의 진정한 힘이 개방된다. 마침내 그녀는 더 이상 다른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며 자신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 속 캡틴마블은 영화 속 인물들을 넘어 영화 밖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다. 시대를 지배했던 “말 잘 듣는”, “사랑스러운", “섹시한” 여성 모델과 대조되는 “승부욕 강하고", “진취적이며”, “주도적인” 여성 모델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여자아이들이 꿈꾸는 히어로가 되길”이라는 브리 라슨의 말처럼 새로운 가치관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있는거 같다.
시대의 가치관에 저항하는 일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그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수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성과 남성의 모델에서 완전히 해방된 미래의 사회를 한번 상상해 본다. 네일아트하는 남자와 화장 안하는 여성이 창피를 당해 마땅했다는 과거가 미래의 남성과 여성에게 야만적이거나 불행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