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뉴 Aug 03. 2019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

할머니, 잘 먹었슈!

드디어 주말이 왔다. 한 시간만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그때였다.


“OO아, 밥 먹어!!”


어젯밤 분명히 ‘내일 아침 안 먹어유’라고 말했는데...


나는 억지로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투성이다. 그중에 한 녀석이 눈에 띄었다. 냉장고에서 그 녀석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내가 먹지 않아도, 항상 식탁에 올라와 있다. 나는 그것만 보면 20년 더 된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 녀석을 만난 것은 겨울이었다. 오래된 나무 대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인천에서 살다가 7살 때 외할머니(앞으로는 할머니라고 하겠다)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불편했었다. 도시 깍쟁이었던 나는 신발에 조금의 흙 묻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제일 불편했던 것은 음식이었다. 늘 진수성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구성을 갖춘 밥만 먹다가 김치와 장 밖에 없는 밥을 먹으려 하니 어린 나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웨에엑! 이고(이거) 어떻게 먹어!”


깨작깨작거리며 아주 조금 집어 먹은 나는 이내 ‘퉤퉤’하고 뱉어냈다. 아주 어린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내가 먹은 음식은 새우젓(무침)이었다. 족발이나, 수육을 찍어 먹을 때, 혹은 김치를 담글 때 등등 양념으로 쓰이는 게 새우젓이다. 하지만 내게 새우젓은 김치와 함께 최고의 반찬이었다. 




새우젓을 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등교 전 할머니는 한 상을 차려주시고 밭으로 나가셨다. 그러면 나는 일어나 한 상을 거하게 먹고 학교에 간다. 그리고 가는 길에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께 손을 한참이나 흔들고 다시 갈 길을 갔다. 손을 흔들 때까지만 해도 입에서 새우젓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양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년이 올라가도 내 입맛은 점점 할머니가 해준 음식에 맞춰졌다. 가끔 다른 분들이 해주시는 새우젓 무침을 나는 먹을 수 없었다. 편식하지 않는 아이었지만, 그것만큼은 철저하게 편식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밥집만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새우젓이었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도통 그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생각이 났다. 흔하지만 내가 먹은 그 맛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추억의 음식으로 된장찌개나 소고깃국 등을 찾는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으면 위로도 받고, 힘도 얻는다고 한다. 나는 그 음식이 ‘할머니가 무쳐준 새우젓 무침’이다. 나는 새우젓을 먹으면, 아니 생각만 해도 모든 세포들이 살아난다. ‘퉤퉤’하고 뱉어대던 그 음식이 No.1이 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새우젓 무침을 잊을 수 없다. 매 끼니 먹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할머니가 연세도 많으시고 또 굳이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 나는 늘 아침을 하시겠다는 것을 말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출근할 때쯤 나는 항상 식탁에 앉아 있게 된다. 예쁜 종지에 담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그 새우젓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가 지난 날들 동안에 받은 사랑이고 관심이었고, 위로였기 때문이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 반가운 새우젓, 그 새우젓에 담긴 지난 모든 날들,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100세에 가까운 노인의 헌신을 만나기 위함이다.  


어우, 밥 먹길 잘했네. 잘 먹었슈.



작가의 이전글 그만해, 진입 금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