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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Aug 22. 2019

바람이 분다

한 걸음을 떼다.

아침저녁으로 나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침부터 대차게 틀어댔던 에어컨도 이제는 더 이상 틀지 않는다. 방에 나 있는 두 창문을 가볍게 열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때문이다. 퇴근하는 길에도 더 이상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창문을 조금만 내려도 정말 시원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도 어느덧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녁 8시였나. 7월 말 해도 환했었는데. 하루하루 줄어드는 낮을 보면, 벼 이삭들이 벌써 패는 것을 보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세상이 벌써 가을(秋)을 준비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무렵,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지난 4월에 매몰차게 던져 버린 그 길 위에 다시 한번 더 서 보려 한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기회들을 망설이다가 놓쳐버렸다. 그래서 어렵게 찾아온 제안을 어렵게 받아들였다. 부담스럽고 어려워도 일단 한 걸음을 뗐으니 달라지겠지.


지금의 내 모습은 지난 4월 이후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 앞에서 설 때 느꼈던 쿵쾅대던 심장의 소리도 희미해졌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쉴 새 없이 떠올랐던 아이디어들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이들 앞에 설 때뿐이라면, 나는 기꺼이 맨바닥에 부딪힐 준비는 돼 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On Teaching)’에 나오는 대목을 소개한다. 


“그러므로 그대들 모두가 신 앞에 홀로 서 있는 존재이듯이, 그대들 각자는 스스로 신을 깨닫고 스스로 세상을 이해해야만 합니다.(And even as each one of you stands alone in God’s knowledge, so must each one of you be alone in his knowledge of God and in his understanding of the earth.)”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만날 때, 뜨겁게 만났다. 거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지나친 열정은 사건사고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는 것. 나는 마치 광인처럼 3년 반을 보냈다. 실수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도 아이들도 여기저기 상처만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4월의 초. 나는 내게 실망하여 모든 걸 던져버렸다. 소중하게 대했지만, 어떤 기준에서 소중했는지 알고 나니 정말 부끄럽다. 그리고 제일 부끄러웠던 것은 세상에 대한 지식과 교육에 대한 지식에 비해 나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종교인이다. 내게 있어서 신이라는 존재가 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지식과 열정으로 무장한 내가 몇십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에 내게 다가온 신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제 내가 믿는 신 앞에 한 가지 결심을 하려 한다. 신을 만나듯 경건하게 아이들을 만나야겠다고. 


다시 바람이 분다. 시원해진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들어와 어느새 뜨거웠던 마음을 식혀주었다. 그리고 다시 이 길 앞으로 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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