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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Nov 12. 2022

삶에서 남은 것

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넷플릭스

  제목에서 언급했듯이 삶에서 남게 된 것은 고양이 세 마리와 넷플릭스이다. 이건 우선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 동료 형 이야기이며, 그 형에게도 이 이야기를 글로 한 번 써보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땐 굉장히 멋있어서 '우와!'를 연신 내뱉었다. 어쩜 그런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냐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반응은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반응이었다. 멋있는 말이 아니라, 씁쓸한 말이었다.


  저 말을 한 형의 과거는 특별히 더 화려했다. 베풀기도 잘하지만 놀기도 잘하는 소위 인싸 중에 인싸였다.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인간관계가 정리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형은 뼈아픈 아픔을 겪었다고 했다. 혹여나 내가 잘못한 건지 늘 노심초사였다고 했다. 우리도 이미 잘 알 듯이 세상이 다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형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때 되면 알아서 정리되는 그런 관계들에 조금씩 신경을 끄게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본인이 그려놓은 영역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정리될 때였다. 나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과정은 더욱이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정리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넓어지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 정말 허무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선 배신도 있었고, 헤어짐도 있었으며, 살면서 겪는 다양한 사건들로 얼룩진 것들이 있었다.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이것들은 일종의 자아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면 몹시 괴롭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걸 어찌하겠는가. 넘어진 삶을 다시 일으키려면 무언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형에겐 고양이들과 넷플릭스뿐이었다. 


  동물도 좋아하지 않던 그 형은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온 길냥이에게 온 마음이 쏠렸다. 지극정성으로 돌봐 길냥이는 새끼들을 나았고 세 마리가 되었다. 일부 싫어하는 사람들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며 길냥이들을 돌보았다. 퇴근 후 형만의 특이한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여 와서 안 기고 비벼대는 모습에 형은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듯했다. 출근 전 집 앞에서 쪼르륵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형은 인생까지도 빼앗긴 듯했다. 사실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긴 하다.


얘들은 거짓말은 안 하잖아.

  그동안 데이고 베인 쓰라린 경험들의 총합이 저런 말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이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넷플릭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제일 빨리 느끼는 곳이 각종 OTT 플랫폼들이다. 넷플릭스도 비슷한 OTT로써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필자의 경우) 반드시 여행이 필요한 시점에 과감히 떠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돌아다니며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사람마다 다 틀리겠지만, 특별히 요즘 같은 시대에 넷플릭스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맨 위로 돌아가 보자. 멋있다고 했다가 씁쓸한 말이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가만 보니 이것도 그 형에겐 웃기는 생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 남은 게 고양이 세 마리와 넷플릭스뿐일지언정 그가 행복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의 과거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최근 몇 년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지금의 남겨진 것들과 함께 더 행복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씁쓸하다는 것도 내 기준에서 평가한 것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내 삶에 저렇게 남겨졌다면 정말 씁쓸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 가지가 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쉽지 않다는 것. 그 쉽지 않은 삶을 묵묵히 자신 만의 방법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겐 멋이 있으며,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것.


  이제 밀린 슈룹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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