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일부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나는 제주도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다. 뜨거웠던 열정과 꿈이 한 차례 물거품이 된 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바닥에 납작 엎어져 있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입 속에 뭔가를 넣으려면 일을 해야 했고, 아르바이트 식으로 공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나는 사람은 꿈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야만 방향도 의미도 힘도 잃지 않는다고 믿는다. 제주도에서 그렇게 해서 망했는데, 또다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스무 살에 꿈을 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의 벌이는 꽤나 쏠쏠했다. 계획대로라면, 큰 변수가 없다면, 금방 공장을 탈출하여 스페인 어딘가에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공장 일이라고 해서 어려울 것은 없었다. 공장 일은 내게 익숙하다. 각종 막노동부터 공장일은 나름 경험이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한몫했다.
시간이 1년쯤 지났나. 떠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때에,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각국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막혀가면서 나는 그동안 예매해 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취소해야 했다. 세상에 진리가 하나 있는데, 절대로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될 때, 야심 차게 떠나려고 이 고생을 했는데,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 나의 기회를 코로나 놈이 가져가버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무 살, 대학 입학 후 누군가에게 우연히 들은 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 두었던 나의 버킷리스트 맨 꼭대기 위에 위치해 있던 아이다. 그 당시 여행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할 수 없었던 꽤나 퍽퍽한 삶의 연속이었기에 용기를 가지는 데에만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2년 가까이 돈을 모으면서 이제 막 떠나려던 찰나에 코로나가 막은 것이다. 젠장.
서둘러 퇴사를 취소했다. 결국에 공장에 남게 되었고, 지금까지 잘 다닌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아직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현실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다시 용기를 갖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듯싶다. 그렇다고 앞서 말한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여전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갈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기꺼이 일개 공돌이로 살아갈 것이다.